아가야, 어떻게 견뎌냈니?

by 은연중애

오후의 수영장, 막 유아 수영 수업을 끝낸 병아리들의 재잘거림으로 탈의실에 생기가 가득하다. 어린아이들이 선생님 앞에 줄을 서 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머리를 일일이 하나하나 드라이기로 말려 주신다. 여자아이들 머리가 한결같이 공주님처럼 길다.


나의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그때는 수영장도 없었고, 아이들 머리는 모두 짧았다. 한집에 다섯 혹은 여섯 남매가 기본인 시절이었으니 아이의 머리가 길면 엄마가 관리해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제는 내가 공부하는 곳에서 숙제로 어린 시절에 마음 아팠던 기억을 기록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강사님이 덧붙이시기를 10살 이전 마음의 상처가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90퍼센트 좌우한다고 하셨다. 과연 그 말이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지와 같이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그 시절의 상처는 인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다.


숙제를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열 살도 되기 전에 있었던 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뚜렷이 기억나고 그때 슬펐던 감정도 다시 생생하게 올라왔다.


장에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엄마를 기어코 따라갔다가 엄마를 놓쳐서 길바닥에서 울었던 기억. 10살 많은 큰오빠에게 자두를 먹었다고 추궁당하다가 무릎 꿇려서 울었던 기억. 초 1학년 때 처음 타본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구본이 너무 어지러워서 내렸다가 선생님께 뺨 맞았던 기억.......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일들이 그 시절에는 일상에서 다반사로 일어났고, 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던 시절이다. 지금 돌아보면 한 반에 80명이나 있던 초등학교 시절이다 20대 어린 여자 교사로서는 아이가 갑자기 대열에서 이탈해서 아주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 당시 사춘기 선머슴이었던 오빠 입장으로는 자두 안 먹었다고 빠득빠득 달려드는 꼬맹이가 참 얄미웠을 것이다. 그 시절 엄마 입장으로는 고만고만한 어린 다섯 남매에게 시달려서 당신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어른이 되었으니 그들의 상황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때 그 어린 아기는 무엇을 알았을까. 아무 힘없는 그 아이는 그저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다. 아직도 그 아픔들이 마음 한편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있는데도 씩씩하게 살아온 내가 대견하다 싶다.


구십 넘으신 시어머니가 몇십 년째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하시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딸 많은 집에 어머니가 태어나셨을 때 어른들은 아기가 굶어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 방 윗목에 밀어놓으셨단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고 꼬물거리는 것을 보고 그제야 어른들이 아기를 거두셨단다. 당신이 아장아장 걷던 시절 마당 한쪽에 인삼 찌꺼기를 말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마구 주워 먹어서 지금도 이렇게 살이 빠지지 않으신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시곤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분의 평소 강한 생활력과 음식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마음 속에서 아직도 자라지 않은 그 아기가 계속 속삭이는 것일 수도 있다.

‘먹어라, 먹어야 해, 그래야 우리는 살 수 있어.’

어머니가 안쓰러워지는 순간이다.


오늘 가을 날씨는 청량하다. 햇빛과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로 보도블록에 아름다운 무늬가 만들어진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이런저런 상처와 또 생각지도 못한 기쁨이 교차되어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인생.


우리의 후손들도 살면서 행여나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부디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겨내고 아름다운 무늬를 일구어내는 인생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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