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연세 90이 훌쩍 넘으셨지만, 날마다 복지관에 다니신다. 건강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시는 까닭에 집에서 20분이나 걸리는 데도 워커에 의지하여 열심히 다니신다. 너무 감사하다. 어머니가 복지관에 가시면 점심도 해결하고 오시고 나도 그 시간만큼은 비교적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가량 복지관에 못 가셨다. 늘 정기적으로 다니시던 병원에서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 그것이 부작용을 일으켰는지 갑자기 기력을 잃으셨다. 집에서 그저 안마 의자에만 앉아 계셨다. 감기 기운이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주사를 맞으신 까닭인 것 같다.
물론 안타깝고, 걱정이 된다. 그러나 덩달아 나도 외출이 어렵게 되었고, 어머니 삼시 세끼를 챙겨야 했다. 시중에 파는 죽은 맛이 없어서 못 드시겠다고 하시고 오직 당신 며느리가 끓인 죽만 드시겠단다.
오늘은 늙은 호박죽을 하염없이 쑤었다.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할머니를 위해 흰 죽, 깨죽, 녹두죽 등 여러 가지 죽을 끓이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죽들의 맛이 혀에 감돈다. 붉은 홍시 생각도 났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곱디고운 홍시를 할머니께 고이 가져다 드렸다.
무의식 중에 그런 엄마의 모습이 참 싫었나 보다. 엄마의 인생을 살지 않으려고 무지 애쓰고 살았다. 그러나 결국은 엄마와 마찬가지로 시어머니 드리려고 죽을 쑤고 있으니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벗어나려고 했는데 똑같은 종착점에 도착했다. 학교 문 앞에도 안 가본 엄마나, 가방끈 긴 것만으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딸이나. 엄마는 젊어서, 딸은 환갑 지난 나이에.
그러니 지금 내 심정은 현대판 며느리 노동요(?) 혹은 한풀이 한마당(?)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나를 위로할까?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의 경우를 열심히 생각해 내고 거기에서 위로를 얻어본다.
지인 A의 경우가 생각이 난다. A는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갈 데 없는 시어머니를 지금도 모시고 산다. 훌륭하지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늘도 이를 안타깝게 여기셨는지 다행히 그분의 두 자녀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었다. 지인 B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음에도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생계를 책임졌다. 올해 95세 되신 시어머니를 최근에야 요양원에 모셨단다. 어머니 장례까지 본인이 다 책임질 각오를 한단다.
이런 분들과 비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 징징대지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한편으로는 친구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위로를 구해본다.
(브런치 글, 나이 60, 친구와 놀기_ 온라인으로 만나기 참조)
zoom으로 하니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다도 떨고, 책도 읽으며 마음의 충만함을 가지려고 애쓴다. zoom으로 중년 여인 4명이 한 주에 한 시간씩 소리 내어 ‘책 읽기 모임’을 한 지 3년이 되어간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편’ 네 권 완독 한 것이 첫 번째 성과이고, 두 번째는 ‘총, 균, 쇠’(제레드 다이아몬드 저)를 장장 9개월에 걸쳐서 완독 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서양미술사(E.H. 곰브리치 저)를 읽게 된다.
외출이 제한되는 나의 일상이지만 이 책들을 통해서 나의 시선은 시간적으로는 인류 탄생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지구 북쪽 그린란드부터 남쪽 파푸아뉴기니까지 확장되었다.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편’을 읽으면서는 책에 언급된 지역들을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답사해 내었다.
‘서양미술사’를 끝내고 나면 책에서 언급된 그림을 보기 위해 외국의 미술관 기행을 해볼 것을 꿈꾸고 있다.
꿈!
그렇다. 이것이 나의 최대의 위로가 된다. 지금 나는 비록 작은 방, 책상에 혼자 앉아 있지만
이 나이에도 꿈을 향해 나갈 것을 생각하니 눈에 힘이 생기고,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나의 인격이 다듬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드시고 기력이 없어져가는 시어머니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보듬어 드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나 또한 늙어가는 길 위에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
그 인격은 언제 온전히 다듬어질 수 있을까? 어머니는 기력이 없어져 감과 동시에 입맛은 점점 까탈스러워지고, 성품은 점차 빙퉁그러진 어린아이와 같아지신다. 이 모든 것을 다 참고 맞춰드리면 ‘나는 노비인가?’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분께 일일이 큰소리로 대거리를 하면 집안 분위기도 안 좋아지고, 그 결과, 마음 깊은 곳에서 절망과 분노만 올라올 뿐이다. 인격이 온전히 다듬어지기도 전에 ‘火病’이 먼저 생길까 두렵다.
그러니 이 현실 속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다시 한번 꿈을 꿔야겠다. 이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꿈은 내가 가장 힘들 때, 가장 어두운 시기에, 아니,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 밝은 빛으로 내 인생을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다시 꿈꾸자!
젊은 시절의 꿈은 일을 통한 자기 성취였다. 일, 업적, 자기 성취, 그리고 돈에 매달린 시간들이었다. 좋은 날도 있었지만 피곤했고, 직장이란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 같은 삶이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제 60을 넘어선 지금의 꿈은 이전과는 달라져야겠다.
그렇다면 어떤 꿈을 꿀 것인가?
60대, 젊은 노인의 꿈은 어떠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