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되었다

둘째 아들 결혼식 이야기

by 은연중애

지지난주 주말에 둘째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화창한 가을이었다. 전국에서 결혼식이 최고로 많이 있었던 날이었다고 한다. 대중교통으로 온 사람은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승용차로 오는 분들 중에는 식장까지 오다가 길이 너무 막혀서 오는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청주까지 평소 2시간이 채 안 걸렸는데 그날은 네 시간 걸렸다고 한다.

큰아들의 결혼식은 코로나 시절이어서 손님들이 많이 오지 못했다. 반면에 이번에는 그때의 아쉬움을 덜고자 전국에 흩어져있던 친인척들이 먼 거리를 불사하고 기꺼이 참석해 주셨다.

많은 분들이 오시게 되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친구가 결혼할 때 부모님이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해서 불안이 더욱 가중되었다. 불안은 전염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런 사고는 없었다. 나는 푸른색 한복을 떨쳐 입고 남편과 함께 신랑 측 부조대 앞에서 친구, 친척들을 맞았다. 인사치레일 수도 있지만 신랑이 잘 생겼다느니, 시어머니 얼굴이 활짝 피었다느니 하면서 덕담을 하는데 그 말들이 정말 진심으로 느껴지고 좋았고, 고마웠다.

결혼식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시어머니와 큰아들 가족까지 포함하여 나온 한 장의 사진. 사진 기사가 시켜서 한 것이긴 하지만 큰 며느리는 시아버지(=나의 남편) 팔짱을 다정하게 끼었고, 큰아들은 어린 손녀를 듬직하게 한 팔에 안았다. 나는 결혼하는 아들의 손을 꼭 쥐었고 또 시어머니는 당신 손주 며느리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모두 함박 웃고 있는 가족사진을 보고 감격으로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물론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완벽하게 서로 사랑하고 다정한 가족은 아니다. 사진에는 약간의 환상이 항상 가미되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 한 장의 사진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아이가 태어나서 결혼까지 순간순간 얼마나 많은 힘듦이 있었던가.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사진이다. 게다가 결혼식 사진에 4대가 함께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복도 아니다.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 나의 60대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혼여행 가기 전에 아들이 집에 들러서 결혼식 부조금 정산을 했다. 부조금에 대한 남편의 대원칙은 부조금이 얼마가 되었든 상관없이 그 부조금에서 결혼식장 비용을 제외하고 아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이었다.

내가 결혼할 때는 친정 부모님이 신혼여행 경비만 챙겨주시고 부조금액은 당신들이 가지셨다. 그도 그럴 듯이 대부분 부모님 손님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르게 진행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다른 집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부조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어서 결국 우리가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인데 말이다

남편의 경우에는 그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일찍 돌아가셔서 힘들게 살아온 트라우마가 있다. 인생 목표 중 하나가 아들 결혼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남편은 종종 말하곤 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최선을 다해 주고 싶을 것이다. 아들 집 전세 비용을 도와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남편은 그의 능력껏 해주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진심을 알아주리라고 믿는다.

아들 친구가 한 부조 금 중에 눈에 띄는 부조금이 있었다. “111만 원”. 100만 원도 아니고, 110만 원도 아니고, 111만 원은 뭔가?

알고 보니 요즘은 남자들도 친구끼리 일종의 계를 한단다. 결혼하면 100만 원씩 서로 부조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중에 한 친구가 보낸 금액이다. 부조뿐만 아니라 결혼 선물도 해주고 싶었던 친구의 마음이 보태진 금액이었던 것이다. 그 친구의 센스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이제 결혼식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로하신 시어머니는 장시간 지방 여행이 무리였는지 결혼식 다녀오신 이후로 입맛을 완전히 잃으셨다. 햅쌀밥에 소고기 국도 맛이 없다고 하시고, 매운 것이 드시고 싶다고 해서 김치찌개를 해 드렸으나 그마저도 몇 숟가락 드시다가 그대로 남기셨다. 내 마음에 그늘이 드리운다.

아들은 동유럽으로 긴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지에서 그곳 미술관 사진이니 음식 사진들을 어쩌다가 한 번씩 띄엄띄엄 보내온다. 아들과 며느리 얼굴은 없다. 아쉽다. 아들만 둘 있는 집에서 둘째 아들에게 거는 엄마의 기대는 딸같이 살가운 아들이다. 나도 그것을 무심코 기대했나 보다. 결혼 전후로 아들이 매정하리만큼 나에게서 돌아서는 것을 느끼고 자주 서운했다. 마음속으로는 욕도 했다. ‘바보 같은 놈’, ‘지혜 없는 놈’.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를 스스로 다독인다. ‘이만하면 되었다’, ‘저희끼리 잘 살면 된다.’

이제 앞으로 아들은 나에게서 더욱더 멀어질 것이다. 그는 나의 아들이 아니라 손님이 될 것이다. 아들이 아내와 우리 집을 가끔 방문하면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해 주고 맛있는 밥을 해 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의 남편의 경우를 보니 아들이 엄마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은 본인 나이 60이 넘고, 엄마도 정말 힘없는 할머니가 되었을 때, 다시 말해 서로가 늙었을 때, 연민의 감정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은 나의 남편도 그의 어머니에게 데면데면 굴었다. 아들이 나에게 데면데면 굴어도 괜찮다. 핏줄이 어디 가겠나. 아들에게 연연하지 않고, 지금 두 발로 걷고, 움직일 수 있을 때,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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