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14] 인간, 실격. 그리고.

by 홍기자 입니다

책을 꽤 많이 읽는 편이라고 자부하지만

사실 고전들을 섭렵했다, 라고 말하기엔 굉장히 부끄러운 면이 많다.

편독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고전은 읽긴 읽어야는데 다소 따분해 보이는 교과서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한번은 꼭 읽어야지 했던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이었다.


일단 제목부터 맘에 들었다. 염세주의자의 니즈에 부합한달까.

뭐가 인간 실격이라는 걸까? 글 쓴 작가 자신? 아니면 우리 모두?

책을 보다 유명하게 만들었던 첫 구절도 내 맘에 쏙 들었다.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라니.

야 너두?

야 나두!


이 책은 평이 극단으로 갈리는 몇 안되는 고전 중 하나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문학의 정수를 보여줬다는 평과

그야말로 찌질남이 남의 인생 말아먹은 걸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 일기같은 문학이라는 처절한 평이 한 책에 쏟아지다니. 극단은 언제나 날 설레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말, 공감했다. 이 화자의 정신상태, 그리고 이 글을 탄생시킨 저자의 의도에.


주인공은 그야말로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낮은

사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찌질한 형태의 인간인데

어쨋건 자신이 맞닥뜨린 비극에 대해 남 탓을 하지 않는 점이 상당히 매력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이런 정신상태인 사람들은 다 세상 탓만 하던데 자신 안으로 동굴을 파고 들어가다니.


그렇다고 좋은 사람도 아니지.

말 그대로 타고난 좋은 환경을 전혀 써먹을 생각도, 최소한의 노력을 할 생각도 안했다는 점은

참 아쉬워서 옆에 있었다면 등짝은 갈겨줬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을까?

왜 자신을 깎아내리며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는 비겁한 삶을 살았을까?


...사실은 그 책임지지 않는 태도에서 대리만족을 느껴서일까.

사실 책임질 일 없는 상황이라면 정말 저렇게 살고 싶어하는 내 내면이 움찔했다.


세상이 나에게 정해준 역할이라는게 있는 것 같긴 한데

사실은 자꾸만 어리광 부리고 싶어지거든. 아 역시 나는 미움 받을 수 밖에 없는 쓰레기야, 하며 지나친 자기연민으로 나를 보호하고 싶거든 나도.

나도 분명 잘하는게 있을 텐데, 아니 하다못해 주인공은 그림이라도 잘그려서 그걸로 먹고살려는 시도라도 했지 나는 정말 뭐하는거야.


술도 안먹었는데 글에 주술구조가 개판이다 개판.

뭘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는채 써서 그런거지.


마지막 장이 압권이다.

그래도 참 착한 사람이었다는 마지막 주변인들의 독백은

작가가 주인공의 몸을 빌려서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꼭 그렇게 느껴졌다.


나도, 사실 거기에 살짝 기대고 싶어지더라.

나도 사실 그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라고, 나도 사람은 참 착하다고. 일을 엄청 잘하지 못할 뿐이지.


겨우 내 나이만큼 살다 간

다자이 오사무의 무덤엔 지금도 젊은 청춘들이 성지순례를 하듯 찾는다고 한다.


서늘한 젊은 죽음은

그렇게 낭만화 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주인공이 그렇게 끔찍이도 싫어하던 입방아.


입방아로 시작해 입방아로 끝나는 이 망할놈의 업계에서

오늘도 인간 실격 직전의 나를 탈탈 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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