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 210801. 모란의 연 - 류시화

by Anthony

모란의 연/류시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애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날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이 모란이 안다

불면의 불로 봄과 작별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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