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190731. 무언가 부족한 저녁 - 나희덕

by Anthony

[0731] 무언가 부족한 저녁 by 나희덕

여기에 앉아보고 저기에 앉아본다
컵에 물을 따르기도 하고 술을 따르기도 한다

​누구와 있든 어디에 있든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저녁이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저녁이다

​저녁에 대한 이 욕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차로에서, 시장에서, 골목길에서, 도서관에서, 동물원에서
오래오래 서 있고 싶은 저녁이다

빛이 들어왔으면,
좀더 빛이 들어왔으면, 그러나
남아 있는 음지만이 선명해지는 저녁이다

​간절한 허기를 지닌다 한들
너무 밝은 자유는 허락받지 못한 영혼들이
파닥거리며 모여드는 저녁이다

​시멘트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검은 나방들,
나방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눅눅한 날개 아래 붉은 겨드랑이가 보이는 저녁이다

​무언가, 아직 오지 않은 것.
덤불 속에서 낯선 열매가 익어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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