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이 핸드폰을 고장 냈다.
중간고사를 치르기 이틀 전, 화장실 변기에 빠뜨린 후부터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본인도 염치는 있는지 사달란 소리는 차마 못하고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올 초에 스마트폴더폰으로 교체한 지 8개월 만이라 아직 기계값 납부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새로운 핸드폰을 사주어야 한다니 화가 무척 났다.
"일단 중간고사 기간에는 핸드폰 없어도 되니까, 끝나면 얘기하자."
"그러길래 화장실에 핸드폰은 왜 들고 가니? 앞으론 금지야."
어차피 사줄 핸드폰이고, 죄송하다고 하는 아이에게 이것 말고 더 할 얘기가 뭐가 있으랴.
중간고사가 끝나고, 핸드폰을 사러 가기 전 날, 아이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엄마 친구들 다 아이폰 사용하는데, 나도 아이폰...."
"뭐? 우리 집 브래드서버인 아빠도 30만 원이 안 되는 국산폰 쓰시는데, 학생이 왜 아이폰을 써야 돼?"
사실 핸드폰의 가격보다 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다른데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내가 항상 주장하는 것이 있다. "친구들이 다 한다"는 이유가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이런 원칙을 알기에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아이의 새로운 핸드폰은 보급형인 갤럭시 퀀텀 4이다.
보급형이라 해도 아이의 단순실수로 치러야 댈 대가치고는 큰 금액이다.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는, 폴더폰을 쓰다가 액정이 큰 핸드폰으로 바꾸니 새삼 핸드폰이 너무 소중하다고 신이 났다.
나는 위약금과 기계값, 앞으로 석 달간 써야 할 필수 요금제를 합치면 얼마의 금액이 지출되는지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수없이 많은 "친구들은 다 있는데(하는데)..."의 경우를 겪는다. 친구들과,
함께 갖고 놀아야 하는 장난감, 게임기, 자전거
함께 입고 싶어 하는 옷, 액세서리
함께 가고 싶어 하는 카페나 놀이공원
심지어 함께 뚫고 싶어 하는 귀나 염색까지!!
이런 경우, 친구의 엄마까지 함께 해주자고 나를 설득하려 나서면 그야말로 곤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 나는 원칙을 지켜나갔다.
이 모든 것은 아이의 경제관념을 심어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모든 상황에서 소비를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반대의 상황에도 적용시킨다.
세상 모든 이들이 다 가진 것을
내가 꼭 가질 필요는 없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필요 없는 것도
내가 필요하면 산다."라고 가르친다.
요즘 아이들은 참으로 넘쳐나는 재화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도대체가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결핍을 느끼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집 아이들은 1년에 단 한 번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일 년에 행사가 참으로 많다.
생일, 어린이날, 명절, 크리스마스....
나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이 모든 "무슨무슨 날"들을 다 챙기면서 소소한 선물을 여러 번 받을래, 아니면 그런 돈을 모아서 정말 필요한 것을 한 번에 받을래?라고 말이다.
만일 아이들이 생일선물을 선택했으면, 여기서 또 한 번 선택권을 준다.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할래? 아니면 그 돈으로 생일선물을 사줄까?
이런 선택들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의미 있는 것, 중요한 것의 우선순위를 두는 법을 배운다.
워낙에 어릴 적부터 충분한 설명과 함께 지켜온 원칙들이라 지금까지도 큰 갈등 없이 지속되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선택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타협이 불가능한 항목들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가정에서 소비되는 돈의 주도권은 부모가 갖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아이들이 가계소비의 한축이 되어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돈의 흐름도 투명하게 공개해 준다.
그동안 아이들이 받아온 세뱃돈, 입학축하금 등을 손 안 대고 모아두었다가 여윳돈을 보태서 주식을 산 후, 증여세신고까지 마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본인들의 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후 아이들은 집안 어른들께 용돈을 받으면 각각 저금통장, 체크카드, 현금으로 나눠서 처리해 달라고 가져온다. 제법 돈관리를 한다.
한창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던 큰 딸은 화가 날 때마다 동전을 빈병에 모았다. 그리고 병을 꽉 채운 동전들을 털어 간식을 푸짐하게 사 먹으며 좋아했다.
난 분노를 모아 기쁨과 바꿨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내가 지켜온 원칙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낀다.
둘째 딸은 새 핸드폰을 들고서도, 못내 아이폰이 갖고 싶은 건 친구 따라서가 아닌 자신이 갖고 싶은 것뿐이라고 뒤늦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야, 인간적으로 너는
갤럭시 한 개라도 더 팔아줘야 하는 거 아니니?"
한 기업의 주주로서의 마인드도 가르쳐주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