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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Jul 08. 2021

이제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재정비의 시간 _ 오늘, 지금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가면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 할까봐

이것저것 뒤범벅인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윤종신, 나이



 12살부터 안경을 쓴 나는 눈이 나쁜 것이 항상 콤플렉스였다. 눈은 성장이 다 멈춘 후에도 꾸준히 나빠졌는데, 스마트폰 등장 이후로 더 가속화 되었다. 마흔이 된 해 어느 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눈에 번쩍이는 빛이 보였다. 일시적이겠거니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몇 번을 깜박였는데도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빛은 환하게 나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공포가 밀려들었다. 식구들은 모두 잠이 든 깊은 밤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나를 달랬다. 괜찮아, 자고 일어나 내일 눈 뜨면 괜찮아질 거야. 애써 맘을 진정시키고 누웠지만, 깜깜한 암흑 속에 그 빛은 여전히 번쩍거렸다. 두려웠다. 남은 평생 나는 어둠 속에서도 번쩍이는 밝은 빛을 봐야 하는 걸까.


 다음 날 아침, 다행히 그 빛은 사라졌다. 맘이 조금 놓였다. 아이를 얼른 준비 시켜 학교에 보내고 그 길로 안과에 갔다. 눈에 번쩍이는 빛이 보이는 이 증상은 ‘광시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도 있고, 이것이 몇 개월간 계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광시증은 망막박리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정밀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망막 박리의 전조증상은 아니었다. 그 뒤로 약 두 달간 빛은 내 눈에 한두 번 왔다 갔다.


 내가 나이를 들어가고, 몸이 여기저기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직접 온몸으로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눈앞이 빛으로 가려질 때마다 몸이 두려움으로 굳어졌다. 다행히 증상은 두 달 뒤엔 사라졌다. 30대까지 나의 콤플렉스는 안경 도수가 높아서 얼굴이 많이 못나 보이는 것이었고 렌즈를 끼면서 극복해왔다. 40대에 들어선 지금은 말 그대로 시력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콤플렉스가 되었다. 눈이 불편할 때마다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남은 나의 인생을 내내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까?






 20대, 30대엔 빛나는 젊음에서 나오는 치기로 나를 돌아볼 새 없이 그저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았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은 지금에서야 나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윤종신의 ‘나이’라는 곡에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라는 가사처럼 지금에서야 진짜 나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과거의 했던 행동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이해하고 나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런데 약해지는 몸에 대해 인식하게 될 때면, 바짝 움츠러들게 된다. 아직 너무 젊은데 벌써 이러면 어쩌지 싶어서 두렵고 슬퍼진다.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씩 찾아가는 중인데, 나의 신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하지만, 걱정만 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으니 나이에 따라 약해지는 몸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오래 아껴서 쓸 수 있게 재정비하는 시간이 지금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를 아끼는 마음을 열심히 병원에 방문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 정기검진은 갈 때마다 동공을 키우는 산동 검사를 해야 해서 검진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힘들지만 꼬박꼬박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 끼니를 모두 훌륭하게 챙겨 먹진 못하지만 하루에 한 끼라도 제대로 영양을 맞춰서 먹으려고 한다. 후반부의 인생은 근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니 근력 운동도 챙기려고 한다. 먼저 많이 떨어진 기초 체력을 올리기 위해서 슬로우 버피 하루 100개 첼린지도 시작할 예정이다.


 나는 언제나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니 몸이 약해지면 약해지는 대로 적응하며 살아갈 방법이 있고, 치료해서 나아질 방법이 있다면 너무 많이 두려워하지는 말자고도 생각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내 삶에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자.


 떠밀리듯 살다 나이가 멈추는 날 후회 속에 늦어 버린 사랑해, 용서해 토해내지 않도록,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매달리는 아쉬운 삶이 아니라 이대로도 충분히 사랑했고 노력한 삶이었다고, 행복했노라고 편안히 눈 감을 수 있도록 후회하지 않을 오늘, 지금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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