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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Aug 10. 2021

심장을 아프게 하는 남자

마지막으로 널 봤을 때, 

우리는 둘로 쪼개진 직후였지.

너는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너를 보고 있었지.

네 영혼 속 깊은 아픔은 

나와 같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심장을 반으로 가르는 고통,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The origin of love


집으로 돌아가는 심야 버스 안, 두 사람은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뮤지컬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 였다.





태초에 인간은 머리가 두 개, 팔다리는 네 개씩인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남자와 남자가 한 몸인 태양의 아이, 두 여자가 등을 맞대고 붙은 땅의 아이, 남자와 여자가 하나의 몸인 달의 아이가 있었다. 인간들은 이 형태로 존재하며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고, 이 모습이 신들이 보기에 괘씸하여 마침내 제우스는 번개의 칼로 인간의 몸을 둘로 가르는 벌을 주었다. 몸이 둘로 갈라진 직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둘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하나의 심장이 둘로 갈라지며 느낀 찢어지는 고통은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 고통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야기. 본래 하나였던 둘이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노래.


2011년 가을, 나는 스윙 댄스에 흠뻑 빠져있었다. 스윙 댄스 동호회에 들어가 기초인 지터벅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해왔던 어떤 취미보다 즐겁고 강렬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날은 점점 서늘해졌지만, 스윙 댄스 바의 열기는 한여름같이 뜨거워서 수업을 마치고 나면 늘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스윙 리듬에 몸을 맡기고 스프링처럼 통통 튀며 추는 커플 댄스는 그 즐거움이 대단했다. 서로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밀고 당기는 고무줄같이 팽팽한 텐션은 엔도르핀을 마구 뿜어져 나오게 했다. 그해 가을은 그렇게 스윙 댄스와 함께 무르익어갔다.


스윙 댄스 동호회에서 만난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키가 커서 눈에 띄었다. 뒤풀이에서 이야기하다가 같은 동네 사람인 걸 알게 되었고 그 뒤로 종종 같이 집에 돌아갔다. 그는 말수가 적고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었지만 집에 가는 길에 나누는 대화는 편안했고 즐거웠다.


스윙 음악에 흠뻑 빠져 열심히 바를 누비다 문을 열고 들이쉬는 가을밤의 서늘한 공기는 더없이 상쾌했다. 매주 두 번, 그렇게 기분 좋은 공기를 마시며 우리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같이 집에 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많아졌다.


그날도 스윙 댄스 수업을 받고 뒤풀이까지 한 뒤에 함께 버스를 탔다. 보통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는데 그날은 늦게까지 뒤풀이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 심야버스를 타게 됐다.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드윅 이야기가 나왔다. 둘 다 헤드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둘이 제일 좋아하는 곡이 'The origin of love‘라는 것도 운명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내 심장의 찌르르한 아픔 같은 설렘이 노래 가사 속 잃어버린 나의 다른 한쪽을 만나서 느껴지는 아픔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는 마침 핸드폰에 노래 파일이 있다며 같이 듣자고 한쪽 이어폰을 건넸다. 함께 음악을 듣고 가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존 카메론 미첼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천재성에 감탄하며 웃고 떠들다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는 영 엉뚱한 곳을 달리고 있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서로의 이야기에 폭 빠져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집에 가는 버스가 끊겨 버렸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좋은 밤이었다.


함께 헤드윅의 노래를 들은 그날 이후, 우리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뜨거운 연인이 되었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지금도 가끔 이 남자 때문에 심장이 아프다. 도저히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 아무리 말을 해도 안 통해서. 다 쓴 수건을 바닥에 그대로 펼쳐 놓아서. 다 쓴 휴지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서. 가지가지의 이유로 심장이 아프다.


어쩌면 우리는 한 몸이었다 헤어진 운명의 반쪽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아서 같이 산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도 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함께 노래하고 그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것도 나름 운명적인 만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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