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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Oct 28. 2021

품이 너른 사람이 좋다.

내 새끼들 어여 밥해 먹자.

"야는 못 보던 애네?"

"내 후배야."

"아, 그래."

선배의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그리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나는 어머니께 받아들여졌다. 그 집을 드나드는 수많은 선배네 친구들과 후배들처럼 나도 어머니의 자식이 된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내 새끼들, 어여 밥해 먹자."  


-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정희재 -





존재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사람이 있다. 살짝 뾰족하고 새침한 내가 사실 제일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들. 품이 너른 사람이 좋다.


어린 시절, 외가댁 큰 외숙모가 나에겐 그런 사람이었다. 수줍음이 많고 낯가림도 꽤 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많이 봐야 일 년에 한 두 번인 외숙모를 봐도 엄마 옆에 붙어 눈이 마주칠까 봐 아래만 보던 아이였다. 느릿한 말투의 사투리를 쓰는 외숙모는 얼굴에 웃음 주름이 가득했고, 농사짓는 사람의 햇볕에 그을린 가무잡잡한 피부였다. 입꼬리와 눈꼬리에 웃음을 달고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재밌고 다정해서 나는 외숙모를 참 좋아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시조카에게 읍내에 나가 사주셨던 핑크색 줄의 시계는 오랜 기간 나의 보물이었다.


쨍쨍 햇볕이 기세를 부리는 무더운 여름 완연한 시골인 강경의 외갓집에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은 외숙모의 주름 가득한 웃는 얼굴로 따뜻하고 정겹게 남아있다. 마당의 펌프 물을 눌러보던 기억, 커다란 소 뒤를 따라가다 꼬리에 맞아 놀랐던 순간, 대청마루에 앉아 나무를 깎아 장난감을 만들던 사촌오빠의 모습, 선녀같이 예뻤던 고운 목소리의 사촌언니. 장면 장면이 그림처럼 내 맘에 남아있다.


처음 만난 내 자식의 후배도 바로 '내 새끼'라도 받아들이는 그 품이 참 따스하고 좋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따스하고 너른 품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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