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안 맞는 큰 신발을 끌던 어린이
그날에 나는 내가 미웠어
몇 살 쯤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8살 전후였으려나? 더 어렸나. 엄마랑 같이 신발 가게에 가서 초록색 플랫 슈즈를 샀던 거 같다. 맘에 쏙 드는 신발이었는데 신어보고 신발 맞는 거 같아? 엄마와 신발가게 사장님이 물어보시는데 영 모르겠었다. 이게 맞는 건지 큰 건지. 일단 발은 안 아픈 거 같으니 맞는 거 같다고 하고 새로 산 구두를 신고 집으로 향했다. 어? 그런데 좀 걷다 보니 신발이 크다. 앞코가 짧은 신발이라 벗겨지지 않게 발가락에 꽉 힘을 주고 걸어야 했다. 그렇게 걸어도 신발은 자꾸만 발에서 떨어졌고 엄마는 으이구 핀잔을 줬었던 거 같다. 신발이 크면 얼른 말을 했어야지 하고. 그때의 나는 참 소심하기도 하고, 나에 대한 사실과 감정을 제대로 아는 것도,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던 어린이였다. 별로 특별한 것 없는 일인데 아직도 그때 일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때 나는 내가 꽤 미웠던 것 같다.
신발이 큰 지, 작은 지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미웠다. 조금 걸었을 때 신발이 크면 크다고 말할 줄 모르는 숫기 없는 내가 싫었다. (엄마에게 말하면 되는 건데도!) 어린 시절 나는 내가 그렇게 미웠던 거 같다. 그런데 커보니까 신발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맞게 사는 건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를 안 미워했어도 됐는데.
나의 아이도 자신이 뭘 더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더 편하고 잘 맞는지 쉽게 대답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어린 시절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은 고새 잊고 아이에게 핀잔을 준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 질문인데 왜 대답을 못하니? 하고.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건 어른이 된 지금도 어려운 걸. 갑자기 떠올랐다 저 날 초록구두가 발에서 도망갈 때마다 슬프고 속상했던 마음이. 그 마음으로 아이를 이해해야지. 대답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너의 대답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어야지. 내가 지나온 어린 시절을 잊지 말고 아이가 조금은 더 너그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줘야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이에게 스미지 않게 그런 엄마가 되어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