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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Dec 18. 2020

죄다 죄

  오, 죄라면 달게 받겠나이다. 허나, 저희를 부디 가엽게 여기시고 용서해주시옵소서. 당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우둔한 자들입니다. 당신의 부름에 답할 수 없는 불쌍한 자들입니다. 빛을 바라보지 못하는 눈먼 자들입니다. 오, 광명이시여. 감히 요청드리옵니다. 저들을 사하여 주시고, 은총을 내려주소서.


 불은 자연의 도구였지만, 점차 인간의 생존확률을 높여주고 있었다. 인간은 동물을 구워 먹었고, 식물의 태워 정착지를 넓혀나갔다. 인간은 불을 이용해 동족을 말살하며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인간이 태우지 못할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약자들의 흔적은 살아남은 자들이 불로 지져 재만 남았다. 국가마저 타올랐고, 역사의 페이지도 화염에 이끌려 사라지곤 했다. 심지어, 인간은 죄마저도 불로 태워버렸다. 죄들은 검은 연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소멸되지 않고, 도리어 영생의 한 줄기가 되어.


 지금 죄가 내린다. 어둠을 깔고 앉으며 하늘에서 인간을 채찍질하고 있다. 밤하늘을 수놓은 죄들이, 별의 광도를 어지럽히고 있다. 달의 모습을 지워버릴 정도로 촘촘하다. 과연 내일의 해는 뜰 것인가.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 우주로 뻗어져 나간 죄들이 이 행성의 자전을 막아버리면 어쩌나. 암흑에너지의 일부가 되어버린 죄를 보며 그는 한숨을 크게 지어본다. 이번 죄가 그치면 인간이 맞닥뜨리게 될 운명은, 빙하기인가 암흑기인가.


 그래도 인간은 죄를 다스리려고 해. 기특하지 않아? 그들끼리는 죄를 사기도 팔기도 하면서, 종종 죄라는 소재를 가지고 펼쳐진 놀이의 장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잖아.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문명보다는 혼돈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겠지. 알아. 안다고. 그럼에도 죄가 넘친다는 거. 그래도 말이야. 그들은 뉘우치려고 해. 성찰할 수 있는 존재라고. 죄의식이라는 것을 공유하는 집단이야. 설령 존재 자체가 죄라고 하더라도, 참회하고 회개할 수 있잖아. 죄 에너지를 무수히 많이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상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인간의 죄는 그들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속한 자연을 향해서 저지른 만행들은, 무겁다. 씻을 수 없다. 생존법칙을 넘어서 지어진 죄의 기둥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이 정녕 참회하는가? 반성하며 진심을 다해 가슴을 아파하는가? 오히려 그들은 자연의 숭고함을 기리기보다는 이미 사라진 것들을 멸시하고 잊어가기 바빠 보인다. 이제는 죄 조차로 인식되지 않는다. 자연의 희생과 자정력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없는 것과 같은 위치로 전락해버렸다.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버린 인간의 죄를 향해 지구는 무어라 소리칠 것인가.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단 한 점의 구김 없이 다려진 새하얀 예복을 입고 무릎을 꿇으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서야 찾아온 밝은 빛에 그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에 몸이 절로 움직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을 딛고 올라섰다. 그는 곧 난간에, 십자가 형상을 밟고 서 있더니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날카로운 바람에 의해 몸 곳곳에 상처가 생기고 피의 좌표가 생겼다. 수없이 맞은 뺨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그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류는 안정적이고 따뜻했다.     

 다음날 그를 발견한 것은 매주 일용할 양식을 얻으러 오던 부랑자 무리에 의해서라고 했다. 당국은 그의 사인을 질식사로 단정 지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의 기도는 심하게 막혀있었다. 타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리적인 힘이 개입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항간에는 그가 챙겨주던 부랑자 무리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혹은 그가 몰래 큰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의아해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사라진 것은, 그들의 경쟁에서 좋은 일이었기에 위안을 얻는 사람이 더욱 많은 편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나쁜 것, 악한 것이었으니까.

 

 인간의 죄는 인간이 벌하지 못한다. 인간의 죽음에 관련된 권리는 인간이 모르는 실체에 부여된다. 미지의 존재에 인간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 과정에서 정당성이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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