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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Sep 20. 2020

피가 났다.

그러자 꽃들이 피어났다.

 그의 몸 안에는 걱정과 고민, 불안과 두려움 따위가 차근히 쌓이고 있었다.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지금 그의 모습이 해부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 있다면 아마 사람들은 검은색 덩어리들만 발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아보았지만, 노폐물들은 기도를 막으며 숨을 조여왔다. 그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메스꺼움이 밀려오자 그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상태만 남았다.

 흔들림.

 이제 그만하자는 비명이 목구멍에 걸렸다. 단념과 포기 그리고 존재의 붙잡음. 생존 본능에 이끌려 기관들이 배출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구멍이 죄다 닫혀버려서, 그는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어딘가. 깊고도 어둑한 공간이 필요했는데, 정확히 그 지점에 온 기분이었다. 그는 땅을 딛고 서있지 못하고 공중에 표류하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정신에 찾아온 불순물들은 그곳을 역동적이면서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며 정복하고 있었다. 순간 그는 자신이 마치 제국의 노예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는 점차 잠식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자신이 낳은 생각들에, 몸을 내어주던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분명 현실 속에는 없을 것이었다.


 쿨럭.

 그가 토할 수 있는 건 오직 피뿐이었다. 병원에 가서 여러 번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 소견은 없었다. 찾아간 의사들마다 이럴 리가 없는 데를 연신 중얼거리며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염증도, 암도, 심지어 그렇게 피를 쏟아내는대도 혈액 관련 수치조차 문제가 없었다. 지극히 정상적. 하지만 원인불명의 출혈은 그의 몸 곳곳에서 발생했다. 그는 피가 포도주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세상에 기여할 양식이 되어 사라질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그런데 나를 피 흘리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다시 안식을 부여받았다. 오늘도 죽지 못하고 살아 있음에, 편히 쉬옵소서. 때론 가래와 피에 섞여 켁켁거려도 숨을 놓아버릴 용기가 없는 자에게 최후의 숨결을 남겨주소서.

 그는 제 팔을 뜯어먹으며 삶의 허기를 달랬다. 짓궂게도 그의 신체는 끊임없이 재생되었고 그는 고통과 위안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묘하게 뒤틀린 감정선이 그의 구멍 난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에게 유입되는 극과 극은 통했고, 한 길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일부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공허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자립한 것이라며, 그렇게 또 생존에 걸어보기로 했다. 창가를 넘어온 달빛에게 피를 건네며 인생의 조명을 조금 더 붉게 물들였던 뜨거운 온도를 가진 사람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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