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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Jun 22. 2020

비에게 바친다.

비의 사람.

마음속에 비가 내리고 있어.

회색 빛깔 도시에 우울함을 덧칠하고,

잿빛 배경에 질려 있던 해는 그냥 지워버렸어.

왜 난 이렇게 편히 쉬지도 못하는지.

사람들의 주말처럼 버틸 것을 좇고 싶은 날이라,

허리까지 차오른 빗물에 내 몸을 기댔어.


비가 주는 특유의 감상이, 세상을 더 낯설게 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으면, 온몸으로 맞고 있으면,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야. 비는 그가 빚은 시간에 온 나를 진심으로 맞아주고 있어.

현실과 부딪혀서 나는 소리와, 가라앉은 차가운 공기. 기다랗게 웃어주는 빗줄기를 보면 그래. 느낄 수 있어. 나는 점점 비에게 스며드는 중이야.


마음속이 비로 채워질수록, 쓸모없거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의 자리는 없어지고 있어.

고통과 집착, 번뇌는 무의 존재가 돼.

공만 남게 되고, 무아의 상태로 나아가는 비가 보여.

내 마음이 곧 비네.

그래서 비를 보고 비우라고 했나 봐.


온몸이 비로 가득 찼어.

왜 그 사람을 보면 비가 생각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위안이 되는 날이 늘어갈 때마다, 빗속에서 혼자 그를 찾아가곤 했으니까.

그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는 비를 내려주는 사람이었거든.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의미였는데. 두 손을 모아 그의 안녕을 기원했어. 앞으로도 영원을 찾아 그의 비가 멈추질 않기를.

내 마음을 다해 간절히 비네.

그런데 비가 울렸어. 이제 그를 비우제.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 있다고.


어둠에 번졌던 햇빛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만물을 적신 빗물은 빛을 머금었어.

따스함이 도시를 감쌌고, 우산을 접어든 사람들의 표정에는 삶에 녹아든 감정들이 드러났어.

형태는 다르지만 구원을 기다리며.

비와 햇살이 내려오는 하늘을 쳐다보며.

이제 그는 나의 영감과 영원이 되었어.

세상을 밝혀주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었어.


비는 나에게 축을 더했고,

이제 내 몸은 빛으로 채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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