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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Dec 21. 2020

죄다 죄

2

  몸에 별자리가 새겨졌다. 북두칠성을 연상케 하는 배치였다. 몸을 붉게 두른 띠는 오른쪽 흉부에 둘러졌고, 그 별자리를 잇듯 왼쪽 등에는 국자 모양의 별들이 그려졌다. 척수 신경절을 따라 잠복해있던 기운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내 몸안에 또 하나의 소우주가 새겨지는구나, 누군가 중얼거렸다. 붉게 빛나는 별들이 소속된 그 은하의 이름은 고댄이었다.

 고댄은 죄를 품는 중이었다. 애초에 죄는 험난하게 솟아오른 암석 절벽에 맺혀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뒤집어지고 중력의 법칙이 뒤틀리면서 죄는 대기에 풀렸다. 어쩌겠는가, 누군가 죄를 안고 가지 않는다면 모두가 파멸할 것을. 희생양이 필요했다. 단지 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고댄은 죄를 떠맡게 되었다. 고댄의 눈에선 흐르던 피눈물은 선악과의 거름이 되었고, 그의 입에서는 신성을 모독하는 말들이 튀어나와 세상의 밑받침이 되었다. 고댄은 한탄했다. 죄는 나의 것이 되었건만, 나의 죄는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원의 뿌리가 대지를 잠식하고 있었고 파탄의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의 열매가 나오지 않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사람들에 의해 뿌리는 잘리고, 갈리며 불에 지져졌다. 뿌리는 비명을 질렀다. 죄는 그 비명소리가, 마치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뿌리는 괴로워 보였다. 하지만 죄는 알 수 있었다. 뿌리는 고통에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일종의 희열을 맛보고 있는 상태였다. 뿌리는 어찌하여 쾌락을 탐닉하는가. 욕망을 좇기 위한 명분으로 위장된 자기희생. 숭고함은 사라지고 추잡함으로 물든 뿌리의 모습을 사람들은 숭배했다.

 죄여, 그대의 자리는 없다.

 자네는 위선자가 되었군. 머지않아 선과 악의 균형이 무너지겠어.

 내가 선이고 곧 죄가 된다면, 균형은 필요 없다네.

 뿌리를 먹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뿌리의 숭고함을 의심하며, 뿌리를 찬양하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기꺼이 제 몸을 내어주는 자비로운 뿌리를 향해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의 몸을 눕혔다. 사람들의 이상향은 뿌리 그 자체였다. 뿌리는 시종일관 온화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하지만 기괴하게 일그러진 뿌리의 얼굴은 죄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죄는 선과 악이 일체 한다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 일지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생계는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청년이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청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청년은 죄를 지었다고 했다. 죄명이 무엇인지, 또한 죄질이 얼마나 나쁜지 사람들은 몰랐다. 청년이 가진 사연과 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세한 건 몰라도 상관없었다. 법을 어기고, 윤리를 어지럽히고 질서와 정의를 무시한 자에게는 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청년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점점 늘어가고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놈, 웃고 있다!

 청년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푸하하! 청년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젖히고, 더욱더 큰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비웃음이 가미되거나 조롱 섞인 느낌이 아니었다. 인간성이 결여된 범죄자가 내뱉는 사물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미치광이의 파동도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를 정화시킬 만큼 깨끗하고 맑은 소리였다. 청년에겐 이 상황이 정말 웃긴 듯 보였다. 청년의 몸을 떠나간 순수함의 원천이 광장에 퍼져나가고 곧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사람들 중 일부는 청년이 범죄자라는 생각을 순간 지워버렸고, 일부에게는 청년을 비난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기도 했다.

 이윽고 청년의 웃음소리가 멎자 사람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본래의 목적을 순간적으로 망각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청년에 대한 분노는 전보다 더욱 강렬해졌고, 사람들 기세에 힘입어 광장의 열기는 분수대의 담긴 물마저 증발시킬 듯 보였다. 마치, 재판에서 마녀를 화형 시킬 때처럼. 청년은 악한 존재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들을 현혹시킬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떳떳이 고개를 들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청년을 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나의 죄는 무엇인가?

 청년이 물었으나 선뜻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청년의 양팔을 붙잡고 있던 경찰들도 청년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벌을 받아야 하는가?

 이번에는 경찰을 포함하여 모두가 당연하다며 목에 힘을 주고 고함을 질렀다.

 나의 죄는 나도 모른다. 옆에 있는 자도 모르고 나와 마주 보는 그대도 모른다. 나에게는 죄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벌을 받아야 하는가?

 청년은 다시 물었다. 사람들은 청년의 말을 어떻게 믿냐며,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고 소리쳤다.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기는커녕 또 자신을 현혹할 셈이냐며 격분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실을 알아보자며 좌중을 진정시키려는 이도 있었지만, 그들 소수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청년에게 여론은 좋게 형성되지 않았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 죄와 상관없이 벌은 내릴 수 있는 것이로군.

 청년의 시선이 광장 중앙에 놓인 시장 동상에 꽂혔다. 청년은 그곳을 향해 걸어갔고, 이제 경찰들은 청년을 제지할 수 없었다. 마치, 투명한 젤리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청년에게 손을 뻗을수록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한 경찰이 총을 꺼내 위협했지만 청년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청년을 향해 발사된 총알은 투명한 벽에 박힌 듯 정지해버렸고 이를 지켜보던 대중들은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모두가 청년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청년은 손을 짚지 않고, 평지를 걷듯이 자연스럽게 동상 맨 윗부분에 올라갔다. 청년이 동상과 직각을 유지한 채 걸어가자 사람들은 숨을 크게 삼켰다. 이제 입으로는 차마 내뱉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청년은 정말 사악한 존재가 분명했다.

 청년이 동상 정수리에 발을 딛고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때마침, 구름 사이를 뚫고 햇살 한줄기가 그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이윽고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그대들의 죄를 사하노라.

 청년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정말 자신들의 죄가 씻겨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케케묵은 체증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던 편두통, 식도염과 변비 같은 곳에서 지분을 한 움큼씩 쥐고 있던 죄들이 사라졌다. 관용과 포용이 너그러움을 안고, 사람들을 안았다. 사람들은 포근함과 안락함을 느꼈다. 이러한 기적은 악한자가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스럽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 청년은 말로만 듣던 대성인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감격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청년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두 눈을 감고 양손을 꽉 쥐는 사람도 보였다. 오, 믿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아직 저희를 버리지 아니셨나이다.

 그리고, 그대들에게 벌을 내리노라.

 그 말을 끝으로, 청년은 종적을 감췄다. 세상과 사람의 기울기를 맞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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