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ka Jan 21. 2019

삶의 여정엔 언덕들이 있다.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언덕들.

높이도 다르고, 경사도 다른 언덕길들이 펼쳐져 있다. 무한대의 언덕들, 모두 각자만의 특징과 감정의 폭을 가졌다. 우리는 그런 언덕을 걷는다. 뛰기도, 기어가기도, 등반하기도 한다. 그런 행위를 반복한다. 산다는 것은, 우리가 그런 구조에 위치한다는 의미였다.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다 보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다.

즐거운 상태가, 침울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살다가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떻게 매 순간, 행복하기만 할까.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행복하기를 원했다.


행복한 상태가 영원하길 바랬다. 행복은 우리의 종착지였으니까. 삶의 목표이기도 하니까. 알고 보면 행복은 다가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그저 언덕길에서 조우할 수많은 상태 중의 하나였는데. 우리가 붙잡는다고, 곁에 있을 수만은 없는 순간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음을, 왜 몰랐을까.

행복한 상태. 황홀하지만,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는 건 집착이 가미된 욕심이었다.


그리고, 집착과 욕심은 마음속에 괴로움을 뿌렸다. 감정의 괴리를 만들었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좋지 않은 것이 되었다. 불행은 피해야 하고, 병적인 것이 되었다. 불행한 사람은 안타까운, 혹은 능력 없는 사람이 되었다. 불행한 순간은, 그런 상태는 누구나 살면서 겪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불행에서 얼른 벗어나야 했고 극복해야만 했다.


그저, 그런 순간이 찾아왔구나. 그런 상태가 되었구나. 그런 길을 걷고 있는 중이구나. 행복하지 못함을 받아들였으면 되었는데. 행복하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부정하지 말고, 인정했다면 언덕을 걷는 내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지 않았을까. 어차피, 살다 보면 만나게 될 감정들인데. 왜 그렇게, 행복만을 좇았을까.


운명론적으로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감정에 굴복하는 회의적인 자세는 아니다.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의도 아니다.

그냥, 그 감정에 충실하자는 것. 좋고 나쁨의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니까. 어떤 감정의 상태가 되었을 때만 가능한 어떤 것들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산다는 것에, 그런 무한한 가능성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일상이, 조금은 더 기다려지니까.


물론, 언덕을 거닐다 보면 지칠 때가 있다. 눈보라가 몰아치거나, 맹렬한 열기가 우리를 덮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 찾아오는 부정의 감정은 버겁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오르낙 내리락하는 상태의 연속이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순간이 우리를 찾아왔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





작가의 이전글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