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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Mar 16. 2023

백야

백야행.

 서로의 존재만으로 우리는 상처가 되어 버렸기에, 우리는 미움과 미안함을 그리고 고통과 고마움을 가슴에 묻어둔 채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각자의 삶에서 흐르는 시간 속에 우리가 중첩되는 시간이 있을까. 만남의 시간과 사랑의 시간, 그리고 이별의 시간을 나눴던 우리에게 드러난 것은 어긋났던 선들의 부조화. 그 지점에서 정확히 파생되어 버린 이별이 우리에게 단절과 각자의 방향을 비추어준다.


 

 사랑을 수긍하고 또 부정했던 순간들이 사랑의 양면성을 만들어 내고 사랑의 무게를 가중시킨다. 튀어 오를 수 없는 무거움이 사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느 시점 서로가 반反하게 되는 작용의 시간이 닥쳐온다면 무엇보다 탄력적으로 떠나가버리는 사랑이라는 존재를. 사랑은 서로가 반하게 되는 순간에 만남과 이별이 동시에 펼쳐지는 장이며. 사랑은 만남과 헤어짐이 본래 같은 의미라는 종교적 가르침 아래 통용된,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단어의 출처이고. 사랑했다는 독백은 너와 함께한 기쁘고도 슬픈 감정이 흘러나와 세상과 유대를 맺어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새하얀 밤이 펼쳐진다.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관념의 형상이 아직 우리의 과거를 빛내고 있다. 시각이 시간을 교란한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갔을지 혹은 찰나의 시간이 스쳐갔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인식하는 세계와 감정의 상태가 곧 나의 시간이 된다. 영겁과 찰나의 시계는 곧 하나가 되어 같은 시간을 향해 흘러간다. 주관적인 해석을 축으로 세상이 회전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과 형상이 회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새하얀 밤이 펼쳐져 있으니, 깨어 있을 수 있어 좋다는 흐릿한 생각과 어지러움을 빛에 반사시킬 뿐.



 우리가 불안정한 지각에 발을 디딘 건, 단지 우리의 상황이 불안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사소한 불안의 씨앗이 우리를, 우리의 관념을 감히 정의하지 못한다. 우리는 불안을 원동력으로 시간을 태워갔을 뿐, 불안에 타버린 재 따위가 아니었으니. 우리에겐 보다 유의미한 가치가 남아있지 않는가. 너에게 우리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사랑은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그보다, 우리의 관계와 시간 그리고 사랑은 앞으로 너와 나의 삶에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미래와 상상에 깃드는 희망과 낙관에 쓴웃음을 지어보지만 그럼에도 먼 훗날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라는 삶의 명령이 들려온다.



 사랑의 강도와 불안의 정도가 비례했던 과거가 백야가 흩뿌려진 하늘에 떠다닌다. 마치 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이 영원한 번영을 일렁거리게 한다. 아지랑이와 비슷한 아른거림이 피어오르고, 나는 거기서 환영을 마주한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는 현상이 문화적 언어로 출력되는 과정.

 지평선 아래로 차마 내려가지 못하는 사랑이, 시간을 초월하고 나를 망각시키면서 미래 어느 시점에, 우리에 대한 용서와 감사를 간직한 시점으로 데려간다. 아직 밤은 오지 않았지만, 아직은 오지 않은 시간일 뿐이지만, 언젠가 오게 되는 그 순간을 향해 걸어가라는 먼 훗날의 목소리들이 배회한다.

 

 어느새, 백야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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