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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Apr 25. 2020

숙취

술보다 쓴 것.

술보다 먼저 잠에서 깼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달콤한 꿈에 취하기도 전에,

지독한 두통이 찾아왔다.

그런데 머리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끝이 보이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멀어져야 해.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될 테니,

우리는 끝을 내야만 해.


마지막을 붙잡았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 거 같아서.

많은 생각을 달고 살던 너였다.

어느 날 문득 네가 보낸 글은 길었고

나는 거기에 담겨 있는 너의 감정을 느끼며

나의 깊은 어딘가로 추락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 나를 만나,

순수한 너의 마음에 상처를 심어준거 같아서,

힘들게 한 거 같아서, 고생만 시킨 거 같아서

아팠을 너를 생각하니 또 아팠다.

이건 우리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휴대폰을 보는 것조차 아파서, 그냥 눈을 감았다.



물을 들이켰다.


나는 분명 애정을 마신 거 같았는데,

혀에서 출력되는 값은 쓰림이었다.

같은 안녕이었는데,

왜 만남과 헤어짐의 온도는 이렇게 다를까.

사람이 살기 위해서,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들을 체온이 견제하고 있나.

열정을 받아도, 냉정으로 변환되는 것은

피가 가진 본성이니까.

그래서 심장이 뛸 때마다 아픈 것일까.

끊임없이, 나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심장은 살고 싶어 하구나.


근데, 나는 아프고 싶지 않아.

근데, 아파야 할 것 같아.

좋아했음을, 아픔으로 주고 싶지 않아.

단맛을 쓰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정말로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온정으로 족하고 싶은데.


어지럽다.


술은 독해.

독으로 변해서 모든 것을 쓸어 담아가.

너와의 좋았던 기억도,

고맙다고 말했어야 했었던 그때도,

좋아하는 감정을 알게 해 줘서, 너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어서 그게 기쁨이었던 나 자신도.

좋았던 기억과 감정 모두를

철분에 실어 뺏아가는데, 눈뜨고 볼 수밖에 없어.

나를 지탱해주던 것이 사라져서, 갈 곳을 잃었어.

후회만 남았어.


원래 술이 아프고 쓰린 건지.

아니면 숙취로 변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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