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Apr 06. 2024

아빠의 은퇴

위대한 아버지상 수여식

 지난 3월 우리 가족 가장 큰 행사는 바로 아빠의 은퇴. 42년간의 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아빠가 은퇴를 하게 되셨다. 매일같이 지방 출장을 다니느라 힘들어하던 아빠의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도 좋았지만 한 편으론 부모님의 소득이 없다 보니 은근히 부모님의 노후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13년 전 아빠가 다니던 직장이 부도가 났을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나은 상황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취준생이었던 터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힘들었다면, 이제는 엄마아빠에게 기댈 수 있는 딸이 된 거 같아 다행이다 생각했다.


 아빠의 퇴직일이 결정이 나고, 부랴 부랴 디너로 체험단(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조건으로 식사권을 제공받는 것을 의미)을 지원했는데 당첨이 되어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물론 체험단은 2인만 식사 제공을 하기에 1인 추가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엄마 아빠는 이렇게 딸한테 얻어먹어도 되냐면서 미안해하셨지만, 내 힘으로 엄마 아빠께 코스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는 기쁨이 훨씬 컸다.



은퇴선물로 준비한 위대한 아버지상 상장


 코스음식이 다 끝나고서는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드릴 선물이 있다고 했다. 집에서부터 몰래 숨겨온 '위대한 아버지상'. 상장을 아빠에게 읽어드린 뒤 수여를 했는데, 상장을 받아 들자마자 펑펑 우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아빠의 지난 직장 생활이 순탄치 않았구나는 걸 그제야 알았다.


 한 때는 높은 연봉에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아빠를 남몰래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걱정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아빠였기에 그때의 부러움은 예전에 잊은 지 오래였다. 



문이 마구 열리던 서류 가방과 새 서류 가방


 2년 전 아빠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우리 가족은 정말이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아빠는 사실 걱정하셨지만..) 늘 아빠가 들고 다니던 싸구려 서류 가방이 자꾸 문이 열리는 데 그 가방이 꼭 아빠 같아서 그걸 들고 다니는 게 너무도 싫어 엄마와 내가 아빠가 입사하기 전에 아빠의 서류 가방부터 산 일이 떠올랐다. 아빠는 ‘위대한 아버지상’의 상장을 그때 우리가 사준 새로운 가방에 쏙 넣어뒀다고 했다. 


이제는 멀끔한 가방에 아빠의 제2의 꿈을 담을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2023년을 보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