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브랜딩
식역하 지각 디자인
한 때 ‘가슴이 커지는 폰 벨소리’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 히데토 토마베치 박사가 휴대폰 벨소리에 아기 울음소리를 아주 미묘하게 넣고 여성들에게 벨소리를 지속적으로 들려줘서 가슴 크기가 커진 것이었다. 다른 소리에 묻혀서 아기 울음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호르몬이 분비되었고 젖샘이 발달한 것이었다. 이 실험은 우리나라 KBS 2TV ‘스펀지 2.0’에 소개되었고 직접 실험을 해 그 효과를 입증했다. 이렇게 자극(아기 울음소리)을 의식적으로 감지할 수 없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지각하고 영향(호르몬 분비)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을 ‘식역하 지각(Subliminal Perception, 識閾下知覺)’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뇌는 안다는 것이다.
사람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감각(感覺)’은 어떤 자극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지각(知覺)’은 뇌의 해석 과정을 뜻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자극이 우리 ‘감각’을 자극하지만 모두 ‘지각’되는 것은 아니다. 자극이 일정 강도에 미치지 못하면, 뇌가 의식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감각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식역하 지각 이론은 이러한 미묘한 자극이 잠재적으로 해석되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한다.
이 식역하 지각을 활용한 시트콤 에피소드가 있다.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77화다. 이홍렬이 옆집에 사는 배종옥을 짝사랑만 하자, 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이 홍렬을 돕기 위해 ‘작전’을 나선다. 종옥의 에어로빅 비디오에 홍렬의 사진을 교묘하게 삽입해 놓는 등의 전략이다. 종옥은 작전에 휘말린 것도 모른 채, 한 달 동안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결국 종옥의 꿈(무의식)에 홍렬이 나오는 지경에 이른다. 비디오에 사진을 교묘하게 삽입해 놓는 이런 전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식역하 광고’라는 기법이다. 참고로 식역하 광고는 윤리적 문제로 인해 일찍이 방송광고심의규정 제11조에 의해 금지돼 있다.
식역하란 말은 ‘절대역(absolute threshold, 絶對閾) 아래’를 뜻한다. 여기서 절대역은 자극을 알아차리는 최소 에너지 강도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개념을 말하는데, 절대적 식역 수준에 미치지 못하게 한 자극을 한자 그대로 ‘식역하(識閾下) 자극’이라 하는 것이다. 즉, 보거나 들은 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빠르거나 아주 낮게 제시하여, 자극을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무의식 중에 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점은 식역하 지각이 의식적인 인식의 수준 밑에서 제시된 자극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1973년작 ‘엑소시스트(Exorcist)’ 영화에는 아주 짧지만 꾸준히 무서운 악령의 모습이 삽입됐다. 심지어 도살장에 끌려간 돼지의 울부짖음도 미묘하게 삽입됐다.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막연한 공포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적 작업이었는데 실제로 패닉에 빠진 사람이 속출했다. 의식적으로 감지하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감지해 공포를 느낀 것이다.
한 요크대학교 심리학 실험에서 느낄 수 없는 자극에도 뇌는 반응하는지, 그리고 감정에 영향을 주는지를 실험했다. 남성 실험 참가자들에게 겉보기에 거의 똑같이 생긴 1번과 2번 여성 사진을 보여주었다. 1번 사진은 동공이 미세하게 확대된 사진이었고 2번은 원본이었다. 그리고 1번과 2번 중 더 아름다운 여성을 고르도록 했다. 그러자 남성 참가자들은 이 동공이 확대된 1번 사진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고 답했다. 하지만 참가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단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왠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말 뿐이었다. 사실 이유는 진화 프로그래밍 때문이었다. 참가자들의 뇌가 동공이 확대된 여성을 보고 자동적으로 성적 흥분 상태로 지각한 것이다. 이처럼 느끼기 어려운 자극도 뇌에는 많은 영향을 준다.
사람들의 인지 없이 발생 하지만 큰 영향을 주는 정보 처리 과정을 ‘비의식적 정보 처리 과정(Nonconscious Information processing)’이라고 한다. 이러한 처리 과정은 의식 수준에서 감당이 안 되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준다는 측면에서 생존에 꼭 필요하다. 정보 과부하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실시간 모니터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제적 선택과 같은 합리적 판단이 필요할 경우에도 말이다.
베르메이팅거(bermeitinger)의 연구에서 이를 밝혀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A캔디 브랜드가 화면에 아주 잠깐 나타나는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해, 무의식적으로 A브랜드에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A 캔디 브랜드를 참가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접시에 담아두었다. 실험 후, A캔디 브랜드에 노출된 그룹과 노출되지 않은 그룹 간에 A캔디를 먹은 양의 차이를 관찰했다. 그 결과, A 캔디 브랜드에 점화(點火)된 그룹의 참가자들이 더 많은 캔디를 먹은 것을 발견했다. 무의식적인 반복 노출이 A캔디 브랜드의 비의식적 정보 처리 과정을 유도한 것이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카레만스(Karremans)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립튼 아이스’라는 상호명을 0.023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점화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제공되는 음료수를 선택할 때, 다른 브랜드보다 립튼 아이스를 선택하고 소비했다. 실제로 이러한 실험 결과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활용되고 있다. 게임이나 유튜브, SNS, 영화 등의 PPL이 그 사례다. 유튜브에선 다들 콘텐츠를 즐기느라 화면 내의 브랜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시청자들에게 식역하 자극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비의식적 정보 처리 과정의 식역하 노출은 욕구의 유발, 브랜드의 선호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식역하 자극이 소비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클까? 이미 ‘확실한 선호’가 형성돼 있는 경우에도, 이러한 식역하 노출이 여전히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베르우이지메렌(Verwijmeren)의 연구에서 이를 밝혀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들에게 먼저 식역하로 A브랜드를 점화시켰다. 그리고 평소에 습관적으로 자주 구매하는 B 브랜드 제품을 준비해, A브랜드와 B 브랜드 사이에서 제품을 고르도록 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 A브랜드가 평소 선호하는 브랜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식역하로 점화된 브랜드를 더 많이 선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식역하 점화효과는 이미 형성된 개인의 기호를 엎을 수 있을 정도로 지대한 작용을 한다.
과거엔 필요해야 소비를 했지만, 지금은 필요 없이도 소비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원동력을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건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욕망과 감정은 ‘무의식’으로부터 비롯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소비는 비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위 연구 결과들은 식역하 지각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질문해보자.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컨셉을 전달하고 있는가? 나아가 어떠한 식역하를 점화하고 있는가? 어떤 무의식 자산을 가지고 있는가?
사무실에 있는 경영진은 놓치고 있었겠지만, 고객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 느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특히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브랜드경험(BX)은 무형성, 이질성(불균질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우리 눈에 뚜렷이 보이지도 않고 균일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에게 구체적인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도록 모양과 형태를 갖추는 유형화 작업이 필요하다. 무형의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을 통해 가시화해야 한다. 이때 식역하 자극에 대한 올바르며 윤리적인 적용이 된다면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이제 관점을 넓히자. 식역하 지각으로도 브랜드 컨셉과 이미지, 품질 수준까지 느낄 수 있게 윤리적으로 잘 표현되어야 한다. 그 범위는 로고부터 홈페이지, 인테리어, 유니폼, 파사드, 조명, 광고뿐만 아니라 무형자산인 인적자원, 고객관계, 조직역량, 지식자산에 이르기까지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무궁무진하다. 치밀한 식역하 디자인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