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이 결정하는 부동산 가격의 비밀
의식(意識 / Consciousness)이란 깨어 있는 상태에서 대상에 대해 인식하는 정신적 작용을 말한다. 반면 무의식(無意識 / Unconsciousness)은 의식 없이 자동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작용이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두뇌의 활동이며 사고 과정이나 기억, 동기 따위 없이 자연 발생한다. 그리고 무의식적 사고를 통해 의식적 사고보다 더 많은 정보를 의식적 자각 바깥에서 자동적, 비의도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이를 무의식적 작용이라고 한다.
의식과 무의식을 정부 시스템에 비유해보면 이해가 쉽다. 우리 의식은 대통령과 비슷하다. 대통령은 각 부처에 일을 분배한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각 부처의 세세한 내용을 다 알지 못한다. 그래도 정부는 돌아간다. 정부 시스템은 대통령이 세부적인 것을 잘 몰라도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 국정운영은 망가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적 작용은 효율성을 높여준다. 무의식의 자동적인 사고를 통해 신속한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고 의식의 과부하 위험을 줄인다. 대통령이 일을 쉽게 하도록 자기 선에서 자동으로 일 처리를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무의식은 나도 모르게 결정시킨다. 또 완벽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한 여행사에서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일본 관광 패키지’ 홍보물 디자인 일이었다. 일본 관광 패키지에 고객들의 관심이 영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디자인 말고 배경음악의 국적에 따라 그 나라 관광 패키지가 잘 팔리는지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 결과 여행지 미결정 고객들의 경우, 매장에 일본 음악이 나오고 있을 때 평소보다 일본 패키지를 더 구매했다. 이집트 음악이면 이집트 패키지가, 인도 음악이면 인도 패키지가 인기였다. 다른 국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격은 상관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객들이 자신의 여행지 선택이 배경음악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객들은 ‘날 바보로 아느냐’는 식의 불만을 표하며 불쾌해했다. 즉 고객들은 배경 음악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일본 개념이 무의식중에 촉발돼 여행지의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무의식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였다.
이렇듯 무의식은 우리를 편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특히 브랜드 편향이 그렇다. 동원F&B의 국민 반찬 참치캔은 무려 74%의 시장 점유율로 시장을 독주하고 있다. 오뚜기와 사조해표 등이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득하기만 하다. 객관적 품질을 살펴보는 행동, 예를 들면 어느 바다에서 어떻게 참치를 잡았는지, 어느 공장에서 어떻게 위생적으로 어떤 재료를 넣어 가공되었는지, 어떻게 유통되었는지와 같이 고민하는 의식보다는 ‘동원하면 참치’라는 무의식이 고객 뇌에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원F&B의 독주는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 heuristic)’ 때문이다. 대표성 휴리스틱이란 ‘무의식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전형적, 대표적 이미지를 의사결정, 문제 해결에 신속하게 이용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휴리스틱이 경험과 무의식에 근거하고 있기에 “휴리스틱 = 경험 = 무의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래서 무의식은 동원F&B가 참치캔 시장을 대표하는 제품이라고 은연중 받아들이고, 대표적인 브랜드는 곧 객관적 품질이 좋을 것이라고 자동 처리해 버리게 된다. 무의식 왈(曰), ‘그냥 브랜드로 골라’인 것이다.
이런 신속한 결정은 뇌의 과부하를 줄여준다. 아까 예시처럼 대통령이 모든 부처의 일을 완벽하게 점검하고 분석하려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다. 말단에서 세부적인 일은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과부하에 걸리지 않고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모든 조건을 철저하게 해석할 수 없고 그럴 여건도 없다. 또 진화적으로도 생존에 늘 유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자신의 경험, 감정적 직감 같은 무의식에 기초해 의사결정을 해왔다. 심지어 가장 합리적 이어야 할 것 같은 경제적 판단마저도 무의식의 편향에 지배받는다.
아파트의 가격이 무의식 편향에 따라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달라졌음을 밝혀낸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이보라, 박승국 책임연구원이 수행한 <아파트 브랜드가 가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연구에 따르면,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다르게 나타나며, 건설사의 시공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먼저 아파트란 무엇인가? 대부분 사람에게 평생 소비하는 재화 중 가장 고가인 상품이다. 그래서 거래의 빈도가 매우 낮은 상품이다. 소비 주체는 개인이 아닌 가구이며 오래 써야 하는 내구재(耐久財)의 특성을 보여 소비 행동도 다른 재화 구매와는 판이하게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아파트를 살 때 매우 다양한 요인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가격이나 금융 조건, 교육, 각종 시설의 주변 환경과 교통 여건 등과 같은 입지 여건, 공급 평형, 단지 규모, 시공회사, 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사람들은 이런 다양한 요인들보다 단순히 브랜드를 더 믿고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구진은 먼저 상위 7개 브랜드와 그 이외 브랜드로 구분하여 비교 분석을 하였다. NCSI 상위 7대 상위 브랜드는 삼성물산의 래미안, GS건설 자이, 대림 e편한세상, 롯데건설 롯데캐슬, 대우 푸르지오, 현대건설 힐스 테이트, 현대산업개발 I-Park이다. 그리고 지역을 강남권역과 비강남권역을 나눴다.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의 4개 구와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동작구의 4개 구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부동산114를 통해 아파트 데이터를 수집했다. 조사대상 아파트는 2003년 이후 준공한 아파트부터 조사했다. 이는 2003년부터 브랜드 아파트가 집단으로 경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림산업의 용인시 기흥구 ‘e-편한세상’ 브랜드를 분양하면서 이른바 유명 ‘브랜드 아파트’가 시작되었으며 같은 해 삼성물산의 ‘래미안’ 아파트 브랜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브랜드 아파트가 시작되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상/하위 브랜드 간의 평균 3.3㎡당 가격 수치의 갭(gap)은 역시 생각처럼 합리적이지 않았다. 상위 브랜드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이 70.96%로 높게 나타났지만 하위 브랜드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은 37.42%로 낮게 조사되었다. 다시 말해 상위 브랜드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이 하위 브랜드 아파트보다 33.54%p 높게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객관적인 수치인 건설사 ‘시공 능력 평가’와 아파트 ‘브랜드 순위’는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아파트 건설 능력의 종합평가에서 상위 업체로 두산건설, 벽산건설, 포스코건설이 뽑혔지만, 브랜드 순위에선 제외되었다. 즉 시공 능력 평가와 브랜드는 정확히 일치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시공 능력과 아파트 가격에 관련은 적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국에서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전국 아파트 단지에 ‘개명(改名)’ 바람이 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2017년 입주한 부산 범일동 ‘범일LH오션브릿지’는 입주한 지 1년 남짓 된 시점에 아파트 이름에서 ‘LH’를 떼버리고 ‘오션브릿지’로 개명했다.
브랜드에 편향된 아파트 구매 성향은 더욱 강화되며 한 단계 더 진화하게 된다. 건설사들이 더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것이다. 대림산업의 ‘아크로(ACRO)’가 대표적인 예다. 대림산업은 브랜드 철학을 홍보하기 위해 강남구 신사동에 ‘아크로 갤러리’를 운영할 만큼 브랜드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아크로’브랜드는 기존 고급 주상복합 브랜드인 ‘대림아크로빌’에서 가져왔는데 고급 주거 형태가 주상복합에서 아파트로 넘어오며 ‘e편한세상’과 별개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결과는 어떨까?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는 3.3㎡당 매매가가 1억 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성동구 ‘아크로서울포레스트’의 무순위 청약에는 3가구 모집에 26만여 명이 몰렸다. 위치도 좋고 기능도 좋겠지만 역시 무의식과 브랜드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써밋’ 등이 대표적인 대형 건설사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이다.
무의식 왈(曰), ‘그냥 브랜드로 골라’이며 무의식적 작용이자 브랜드 편향이다. 아마 이를 초월적 지능을 가진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관찰하다가, 이름 하나 때문에 아파트 가격을 이렇게 다르게 매기고 그로 인해 격차나 갈등이 생기는 걸 보면 참 웃길 것이다. 부족한 무의식이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마냥 웃기기만 한 일인 걸까? 무의식의 결정은 항상 비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할까? 편향은 나쁜 결과를 가져올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존 바그(Bargh, John A) 예일대 교수의 ‘Before you know it’에 소개된 한 연구에서 과제를 정답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는 의식적 의사결정과 무의식적 의사결정 간 장단점을 비교하기 위한 연구였다. 우선 참여자들에게 옵션부터 선택하도록 했다. 아파트 임대를 위한 조건 중 가장 좋은 옵션이 무엇인지 말이다. 참여자들에게는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했다. 가령 A, B, C 아파트의 위치, 가격, 건설사, 공급 평형, 입지 여건 등의 자료를 알려주었다. 이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면 참여자들이 최선의 선택지를 객관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실험이다. 정보 독해 완료 후, 1번과 2번 실험 조건으로 참여자를 반씩 나눴다. 1번 실험 조건은 ‘방해’였다. 참여자들이 아파트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절차를 포함했다. 이때 간섭 과제로는 산수 문제를 줬다. 643에서 출발해 7씩 계속해서 빼 나가는 과제였다. 아파트에 대한 의식적 사고를 못 하도록 장애를 둔 것이다. 2번 실험 조건에서는 방해 없이 정상적으로 고민을 하도록 하였다. 최대한 의식적 선택을 하도록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1번 방해 조건 사람들이 2번 정상 사람들보다 최상의 아파트 옵션을 더 많이 선택하였다. 의식적 사고 조건보다는 무의식적 사고 조건의 참여자들이 최상의 옵션을 선택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해 검증되었다.
연구진은 이번에 산수 문제를 푸는 동안 뇌 영상을 촬영해 보았다. 그러자 1번 방해 조건의 무의식적인 뇌(자동모드)일 때 활성화된 뇌 부위와 2번 정상 조건의 의식적인 뇌(숙고 모드)의 활성화 부위가 같았다. 특히 무의식(자동화) 처리의 동일 부위가 더 오래 활성화할수록 사고의 퀄리티도 더 좋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아파트같이 고가의 재화를 구매할 때, 심사숙고하여 결단할 때도 보통 무의식적(자동화된) 사고의 선택이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외계인들이 비웃더라도 안심해도 되겠다. 결론적으로 위 연구는 인간 뇌에서 무의식의 몫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준다. 동시에 우리 삶에서 무의식을 무시하고 배척한다면 무엇이 단점일지, 무의식을 슬기롭게 활용할 때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결국 브랜드가 담긴 제품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만족도를 높여주며 또 선택의 결과를 성공으로 이끌어준다. 크고 시공이 잘 된 아파트도 좋지만, 사람들은 브랜드에서 거주하는 걸 더 좋아하듯 말이다. 소비자들은 기능보다 브랜드다.
브랜드는 제품이나 기능 그 자체가 아니다. 브랜드는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무의식들의 집합’으로 앞서 본 사례처럼 편향된 해석과 가격을 유도한다. 기능은 덜하지만, 브랜드 집합체가 우리 뇌의 편향을 유도해 더 ‘사고 싶다’라는 해석을 내리는 것같이, 브랜드는 소비자의 기존 지식·무의식과 새로 유입된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편향을 이끈다.
매년 수십만의 브랜드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머리에 뉴런 지정석을 마련하고 좋은 이미지를 뉴런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또 성공적인 가격 상승을 위해서 브랜딩을 향한 각별한 투자가 요구된다. 그중 무의식을 잡기 위한 다양한 브랜드경험(BX)에 집중할 때이다.
작성자: 위디딧 명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