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작품은 우리 인생을 닮았다. 언제나 예측과는 빗나가기 마련인 인생들, 그 속의 부조리함과 통찰, 난파선 위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세월의 두께가 더해질수록 더욱 깊어진다. 중독된다. 아마도 가장 연극적인 작가가 바로 체호프가 아닐까 싶다. 체호프의 작품에는 연극적인 정서가 많이 담겼기 때문이다. 상실과 외로움, 아날로그적인 소통 그리고 소박한 무대 위의 격정적인 진실, 카리스마 넘치는 통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체호프의 작품 속 주인공처럼 살아선 안 된다는 확신이다. 우린 너무 쉽게 우리의 감정에 삶을 맡겨 버리곤 한다. 그리곤 예술이라는 이유를 댄다. 무절제한 생활에 자신을 던지고 예술의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함부로 절망 속에 자신을 내 던지고는, 그 또한 예술이고 인생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역시 단순한 무절제가 아니라 저항과 혁신의 날카로움 위에 세워진 방종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의미 부여조차 거부할 테지만 말이다.
예술입시는 왜 수능보다 힘든 것일까?
1차를 통과할 실력이 된다면 한예종 입시는 결국 의지의 싸움이다. 연기과 4,500명중 35~40명, 영화과 740명 중 30여 명을 뽑는 입시다. 누구든 실패할 수 있는 시험이다. 냉정하게 평하고 잘못된 점을 수정해서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붙을 것이다. 매년 시험은 계속되고 있고 1년은 너무도 짧다. 1년이란 시간은 포기하기엔 너무 짧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도 적절한 시간이다. 올림픽을 생각해 보라. 4년에 한 번 있는 기회를 단 한 번의 실수로 놓친 선수들을 떠올려 보라. 다시 4년을 기다려서 결국엔 승리하고 마는 선수들을 생각해보란 것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하는 만큼 점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공무원 시험이나 수능과 달리 예술 입시가 힘든 점이다. 연기 입시에서는 키나 외모, 분위기 같은 외적 요인을 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술 입시 준비는 더욱더 현실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백전백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예종에 모든 걸 걸어선 안 된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겨 두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진로도 함께 정해 두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정시다. 나는 수능을 안 보고 한예종만 준비하는 것은 웬만하면 말린다. 한예종 입시는 4,500명 중 남녀 서른 명을 뽑는 시험이다. 어떤 해는 합격생의 3분의 2를 고3 학생으로만 뽑았다. 그런 변수를 두고 한예종만 지원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도전이다. 최소한 2~3등급 이상은 만들어 놓고 (연기과의 경우) 정시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때론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라 할지라도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문을 일단 열어야 한다. 거기서 생각치도 못한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체호프 작품처럼 살지 말라
한예종 때문에 상처받는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따지고 보면 별것 없고, 오히려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곳이 한예종이다. 그러니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짜 예술을 하고 싶은 건지, 그저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닌지, 그도 아니면 이 모두를 염두에 두고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야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객관적인 노력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후에 연기라면 기초작업과 특기를, 영화라면 1차 통과를 위한 언어와 영어, 글쓰기 등 누구나 결과를 낼 수 있는 객관적인 요소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 다시 시작한다면 말이다.
우리의 인생이 체호프의 작품과 닮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체호프의 작품을 따라가서도 안된다. 예술 입시란 욕심을 낼수록 달아난다. 결과를 초월한 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수능처럼 밤새 공부만 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무엇보다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긴장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완이다. 힘을 빼는 것이 때론 힘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실패를 훌훌 털고 일어서기엔 1년이란 시간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해의 수능에 실패했다면 마음을 다잡고 남은 정시와 예대 입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요즘의 예술 입시는 장기간의 릴레이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지치거나 중도 포기하는 친구들이 뜻밖에 많다. 이상을 꿈꾸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냉혹한 현실 앞에선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한다. 비록 현실의 삶이 부조리로 가득하다 해도 우리는 더욱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체호프의 작품처럼 우리의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단순하고 명확하게 직진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