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리 Dec 25. 2022

느슨해짐을 즐기기 위해

행복한 여행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 

올해 12월에는 다채로운 여행을 떠났다. 회사에 입사한 이후 최초로 약 1달 정도의 휴가를 받았는데, 이때를 기회삼아 "잘 쉬어보자."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기획했었다.


12월 동안 총 4번의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의 형태는 아래와 같았다.

[2022년 12월 여행록]
1번째, 12월 5일(월) - 8일(목) 3박 4일, 혼자서 간 홋카이도 여행
2번째, 12월 10일(토) - 11일(일) 1박 2일, 4명이서 간 강원도 비발디 파크
3번째, 12월 18일(일) - 20일(화) 2박 3일, 팀 워크숍으로 간 필리핀 세부
4번째, 12월 22일(목) - 24일(토) 2박 3일, 동기와 둘이서 간 (제주도 여행이었지만 비행기 결항으로 인해 변경된) 강화&경기 여행

돌아보니 약 30년 간 살면서 가장 여행을 많이 간 한 달이었다. 1달 동안 휴가를 받았다고 할 때 누군가는 길게 유럽이나 먼 해외를 다녀오라고 했었지만, 시원하게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과연 가서 "잘 쉬고 있다고 생각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의 휴식감은 편안함, 안락함,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며 느끼는 감각 3가지였다. 나는 앞의 3가지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여행에서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모두 100% 충족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만족해야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여행이 덜 아까울 것이다. 몇백만 원과 긴 시간을 들여 해외로 갔는데 정작 내가 진정한 휴식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여행에서의 만족도는 하락할 것이기에. 그렇다면 그 휴식감을 더 정확히 묘사하고, 환경에 맞는 곳을 간다면 여행에서 얻는 만족감을 최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휴식감을 얻을 수 있는 조건들을 생각해 보았고, 내가 진정한 휴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1) 해야 하는 일이 없는 데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하고 싶은 것은 일적인 것일 수도 있고, 업무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 올해는 휴가가 300시간이 넘게 남을 만큼 쉼을 충족하지 못하고 일을 했었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도 올해 바쁘게 보낸 나에게 합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느슨해지는 것"에 대한 태도는 관용적이었다.


해야 하는 일을 모두 끝낸 후 떠난 여행은 나에게 따뜻하게 선물할 수 있는 합법적 일탈이자 휴식인 셈이었다. 꽉 채워온 일상으로 살아왔다고 약간은 느꼈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여행은 느슨한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기에 여행의 첫 번째 묘미를 즐기기 위해선 다시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채워놓은 일상들은 나에게 느슨한 여행의 정당성을 쥐어주었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선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행도 이와 같은 공식이 성립하는 것 같다.

만족스럽다고 생각한 일상을 보낸 후 기분 좋게 쥘 수 있는 여행티켓


2) 휴식의 안락함


1번이 충족된다면 어느 정도의 안락함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높은 수준의 안락함을 위해선 내가 가장 편안한 상태와 여행을 함께 갈 상대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여행자의 미션 중 하나이다. 


그럼 어떤 상태와 상대를 함께할 때 편한 지를 아는 것이 잘 쉴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참 어렵다. 그래서 나를 규정하는 MBTI나 테스트에 사람들이 열광하나 보다. 그래도 그 조건들을 나열한다면, 조금은 더 선명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여행에서 휴식감을 느끼는 조건을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았다.

2-1) 대화의 템포나 욕구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2-2) 약간 배고프거나 활동을 한 상태에서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로컬 음식을 먹을 때

2-3) (환경 또는 생각을) 정리하거나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진 후 이전보다 명확하고 깔끔해짐을 느꼈을 때


모두 100% 충족한 다기보단, 적절히 채워지는 느낌이면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편안함이 보증된 친한 사람들과 있다면 휴식감을 느끼겠지만(2-1), 혼자 여행하는 삿포로 여행에 있어서는 계획을 짤 때 참고할 것들이 많았다. 


충분히 돌아다닌 후 홋카이도 명물인 칭기즈칸, 카이센동 같은 것들을 맛보며 미식을 즐기거나(2-2), 지금 글을 쓰는 것과 같이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거나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서 멍을 때리는(2-3)것들이었다.


좌) 삿포로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니조시장 다이치 카이센마루 / 우) 가장 편안한 멍때림을 느꼈던 후루카와 호텔 숙소 라운지


3)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며 느끼는 감각


남은 건 새로운 경험이다. 평소에는 해보지 못한 액티비티를 신청해서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스포츠나 관광지를 둘러보거나, 현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따뜻해지는 감각을 좋아한다. 각각의 여행들이 긴 편이 아니었어서 액티비티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일본에 가서 일본에 가서 일본인에게 파파고의 힘을 빌어 소통을 하거나, 현지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얘기하며 반가움을 느끼는 것의 경험들은 흔치 않기에 소중하다. 


(좌)저렴한 물가 덕에 맘껏 진과 칵테일을 많이 맛본 세부 여행, 그 중 탱커레이 진 토닉이 맛있었다. (우) 인생 2번째 보드, S자 연습으로 손바닥과 엉덩이를 희생했다.

이건 추억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20대 중반, 첫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에어비앤비로 빌린 숙소의 문이 열리지 않아 숙소 문 앞에서 2시간 동안 일본인들의 도움을 구한 적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퇴근하고 온 노무라 아키히로 씨를 만났다. 다정하신 아키히로 씨는 캐리어를 끈 건장한 한국인 남자 2명에게 도움을 베풀어주었다. 라인, 전화, 문자 등 모든 수단을 통해 우리를 도와주었지만 결국 문을 열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밤새 술이나 마시자고 먼저 제안해주어 첫 일본여행에서 일본인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일본인과 함께 그의 동네에서 함께 얘기할 수 있었다. 파파고를 통해 이야기했기에 소통은 2차 과정을 거친 후 이루어졌지만, 1차적인 감정의 교류를 할 수 있었기에 소중한 추억과 이후의 여행 성향에 영향을 주었다. 





휴식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 명확해진 덕에 나는 조금 더 "나에게 맞는 휴식감"이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여행은 곱씹을수록 더욱 경험이 확장되기도 하는데, 실체로 만질 수 있을 때 여운이 극대화되기도 했었다. 혼자 일본여행에서 찍은 풍경들을 엽서로 만들었는데, 그 시점의 기억들이 잘 편집되어 되살아날 수 있었고, 그 감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삿포로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로 많든 엽서, 뒷면은 편지 형태로 만들었다.


내년도 잘 쉴 수 있는 일상을 보내는 재료들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뒤돌아봤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