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박약인 내가 1달에 100km 이상 뛸 수 있었던 이유
2021년 3월, 정확히 내가 러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날이었고, 2022년 12월 나는 1년에 1,200km를 달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균 1km당 5분 40초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으니,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올해 100시간 이상을 달린 셈이 된다. 삼성헬스, 나이키런, 런데이 등 다양한 어플을 쓰고 달리기 기록을 했는데, 기록들을 모아보니 2022년에만 1,276.74km를 달린 것이다.
올해 달리기에 목숨을 걸었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매월 100km 이상을 채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거니와 나는 그럴만한 동기도 없었다. 체력이 천성적으로 좋은 것 아니냐고 한다면 역시나 아니다. 체대를 나왔다거나 예체능에 조예가 깊지 않고, 풀업을 2개만 해도 있는 대로 숨을 몰아쉬는 슈퍼 로우 퀄리티의 체력을 가진 사람이다. 퇴근 후 터덜터덜 집에 와서 피곤을 몸에 안고 맥주 한 캔 마시고 자는 것이 소확행인 2년 차 사회초년생일 뿐이었다. 러닝을 한 동기는 살기 위해, 아니 이대로는 걸어 다니는 K-좀비로 전락해서 피곤한 배불뚝이 30대가 될 것 같아 몸이라도 움직여보겠다고 한 20대 후반의 몸부림성 다짐이었다.
첫 다짐 후의 운동은 언제나 그랬듯 처참히 실패했다. 시작을 앞둔 의지는 흡사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의 용장함과 같지만, 인간의 본성 아니 나란 사람의 천성은 대략 2일 정도 투지를 유지시키는 것조차 버거웠다. 인간의 본성인 항상성이란 보편적으로 나를 절망시킨다. 혼자 다짐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지속적으로 운동하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시도해왔었는데 나름 효과가 좋았던 것들을 소개한다.
뛰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어보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과 같이 달리면 낙오되기 부끄러워서 억지로라도 달리지 않을까. 난 동네 창피한 줄 아는 사람이니까.(내가 사는 동네는 애정한다.) 동네 커뮤니티 어플을 찾아 집 인근인 마포대교에서 뛰는 러닝크루에 가입했다. 효과는 꽤 그럴싸했다. 모임에 신청해서 함께 달리니 러닝은 다짐에 의한 행동이 아닌 약속에 의한 행동이 되었고, 나름 사회적이었던 나는 그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 뛰러 나갔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항상성을 체득해 갔다.
이제 커뮤니티도 들어갔겠다, 더욱 열심히 할 동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높이는 것이다. 나는 그 방법으로 러닝크루의 운영진이 되기로 했다. 어떠한 혜택이나 비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운동을 억지로라도 할 수 있는 책임감이 부여된다면 조금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었다. 얕은 재능이지만, 디자인 툴을 다룰 수 있어 크루의 로고와 바람막이, 깃발, 현수막 등을 제작하며 소속감과 책임감을 올렸고 어느새 러닝을 주기적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취미로만 지속한다면 삶의 일부가 되긴 어렵다. 취미를 더 잘하고 더 오래 하기 위해선 공식적인 이벤트를 활용해야 한다. 러닝의 공식적인 이벤트는 마라톤이 되겠다. 2022년에 크고 작은 마라톤을 신청했었고, 7~8개 정도의 마라톤을 하면서 더 빠르게, 더 잘 달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마라톤 신청 시 주는 티셔츠는 정말 이쁜 게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러닝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위에서도 다루었지만, 나는 러닝 기록 어플 속에서 방황하다 지금은 삼성 헬스로 정착했었다. 러닝 기록 어플을 고를 때 본 중요한 지점은 운동기록이 누락 없이 잘 되는지, 그리고 러닝 후 기록을 나타내는 화면이 느낌적인 지, 그리고 러닝 기록 시작과 끝이 간편한 지였다. 기록 공유 화면이 너무 투박하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삼성헬스가 딱 투박의 정석 스타일이어서 여러 가지를 써봤고, 결국 스마트워치 연동이 제일 편한 삼성헬스로 정착했다. 삼성헬스의 투박함도 22년 10월 업데이트되면서 약간 봐줄 만(?)해졌고, 기록도 상세하게 되는 편이라 아마 계속 삼성헬스를 사용할 것 같다.
지금까지 써본 러닝기록어플 장단점을 기록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삼성헬스
장점 : 갤럭시 워치를 쓴다면 기록이 엄청 편리함(그냥 워치에서 버튼만 누르면 됨), 업데이트 이후 갖춘 UX 감성, 페이스, 고도, 케이던스, 심박수 등을 자세하게 그래프로 나타내줌(심지어 발 좌우 비대칭 정도, 규칙성까지 나온다.)
▶ 갤럭시 이용자나 갤럭시 스마트워치가 있다면 무조건 추천한다.
2) Nike run club
장점 : 브랜드 매력, UI/UX가 깔끔함, 공유 화면이 나이키스러움, 동일 어플 쓰는 사람끼리 공유가 쉬움.
단점 : 뛰다가 로그아웃 되는 경우 빈번함, 기록이 가끔 잘 안됨. 아이폰 추천.
▶ 아이폰 이용자에게 추천한다. 스트라바 앱도 많이 쓰는 듯하다.
3) Runday
장점 : 앱 내 러닝 커뮤니티가 있어 온라인으로 함께 뛰는 느낌을 낼 수 있음. 내가 뛰고 있을 때 친구가 박수 버튼을 누르면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박수 알람이 감(기분 좋음), 주기적으로 응원멘트를 날려주는데 힘들 때 나름 힘이 남.
단점 : 업데이트 이후 불편해진(주관적) UX/UI, 로그인 시 광고 팝업이 뜸, 기록을 상세하게 모아보기 어려움, 달리기 목표 설정하는 게 직관적이지 않음.
▶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기록까지 완료했다면 그 뒤 단계는 공유하기이다. 공개된 곳에서 지속적으로 공유한다면 러닝을 꾸준히 하고 해당 활동을 올리는 "항상성"이 생기고, 앞서 나에게 절망을 준 것과 반대로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올리고 싶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법. 나도 지속적으로 할 때마다 올리기 위해 별도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운동을 하는 기록들을 일별로 올려두고 있다. 운동을 아예 못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아마 핑계일 확률이 높다.) 지속적으로 올릴 생각이다.
위의 과정들을 거쳐 어찌 됐던 한 달 평균 100km를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달리면서 느낀 건, 정말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과 더 깨어있는 시간을 활력 있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겸손과 여유는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작년보다 100시간을 뛰는데 할애했지만 뛴 덕분에 나는 올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러닝뿐만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에도 위 법칙이 적용될 수 있겠다. 다만 나는 러닝을 하며 만족했고, 재미있었기에 위 수단들이 촉매가 되어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운동은 삶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그 과정을 최대한 즐기면서 하려고 했고, 지금도 계속 즐기고 있다. 이렇듯 해야 하는 것들을 내 삶의 작은 영역으로 만들고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채워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