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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Aug 05. 2023

아, 집밥 먹는 게 이리도 어려운 것인가요

집밥을 대하는 자취생의 생활 레시피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 때의 '집밥'을 상상해 보자. 따끈한 온기가 가득한 고슬고슬한 밥, 두부와 고기를 넣고 우리 엄마만의 비율로 만든 양념을 넣어 보글보글 끓인 김치찌개가 생각이 날 것이다. 저절로 침이 나오고 당장 숟갈을 들고 싶어지는 단어이다.


하지만 자취생의 집밥은 어떨까?


자취생의 집밥이란 많은 절차와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요리하고 내어담고, 설거지를 하는 것 등 무수히 많은 절차들이 "집밥을 먹는다"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다지 좋은 모습만이 연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어렵다. 집밥을 해 먹는 일 말이다.





자취생이 집밥을 먹는다는 것은 세심한 신경과 다양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오늘의 끼니"라는 결과물 하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작은 주방의 사이드 프로젝트와 같다. 이때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것도 나 홀로이고, 그것을 평가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집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기에는 아래와 같은 절차들이 필요하다.


1. 재료 준비하기

바로 장을 보는 것이다. 쿠팡프레쉬나 걸리면 바로 새벽에 도착하는데 뭐가 힘드냐는 말이 있겠지만, 장을 볼 땐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계속 밥을 만들지 않아서 냉장고에서 썩어갈 재료들인 지, 요리 하나를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가 필요하고, 요리 재료로써 범용성이 괜찮을지, 요즘에는 똑같은 재료라도 다양한 브랜드와 맛이 많기에 그것을 따지기만 해도 온라인 장보기는 쉬운 게 아니다. 오프라인도 더더욱.


2. 재료 보관하기

재료를 사서 바로 요리에만 넣으면 되는가? 천만이다. 자취생은 쓰는 재료의 포션이 많지 않기에 모두 소분하여 오래 먹을 수 있도록 보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재료마다 보관법은 얼마나 많은 지, 양파 보관법, 당근 보관법 등 재료마다 보관법과 컨테이너가 다르다. 이것을 모두 잘 알고 있어야지만, 다음 재료를 활용할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3. 레시피 익히기

미디어 4.0 시대에 레시피는 널려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레시피가 있어도 익히지 못한다면 완성품과 나의 요리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영상을 보고 STEP을 익히고 숨이 죽는 순서대로 재료를 투입해야 한다.

 

4. 재료 다듬기

이제 재료를 다듬어야지. 양파 반 개를 7초 만에 썰 수 있는가? 아니라고 대답했다면 양파 칼질부터 배워야 한다. 칼을 잡는 법과 손질법에 맞게 재료를 다듬고, 이모저모를 맞춰야 한다.


5. 불 조절을 통해 재료 익히기

열로 인해 재료들을 익혀야 한다. 이때 너무 많이 익혀도 안되고, 너무 조금 익혀도 안된다. 적절한 불 조절과 시간이 있어야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있다.


6. 내어담기(플레이팅)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지 않은가? 사실이다. 왜냐면 잘 담긴 음식을 보면 내가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담기에 좋은 그릇도 필수이다. 나는 정갈한 일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식 자기를 활용하여 요리를 담았다.(아래 사진 참고)


7. 설거지하기

자취생의 피할 수 없는 숙명, 설거지이다. 복잡한 요리일수록 설거지거리도 많다. 세재를 묻힌 수세미로 뒷면까지 깨끗이 닦고 나서야 모든 과정이 완료된다.


적다 보니. 갑자기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북받쳐 올라온다. 이렇게 하나의 요리가 완성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신경과 컨트롤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니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나의 "끼니 차려먹기" 대한 평가를 등한시했다. 솔직히 적자면 등한시해도 됐었다. 그렇다 보니 끼니 챙기기 프로젝트 평가는 5점 만점 중 2.5점 이하로 머물러있었고 더 잘해 먹기 위한 행동을 잘하지 않았다. 계속 남이 해주는 밥을 먹기 싫다는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집밥을 해 먹고 싶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집밥은 굉장히 귀찮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대개 하기 귀찮은 일들은 살아가는 데에 질을 올려준다. 그리고 빠르게 하면 할수록 더 쉬워지고, 삶의 질이 올라간다. 우리가 일부러 몸을 움직이면서 체력을 키우면 일상에 활력이 도는 것과 같다.


내가 살 옷을 직접 고르고, 내가 살 집을 직접 계약해서 사는 것처럼, 내가 먹는 것도 내가 직접 계획해서 먹을 수 있다면 의식주의 독립이 일어난다. 의식주에 있어서는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다.


아직 살 날이 70년 정도 남았다고 쳤을 때, 내가 내 음식을 제대로 해 먹는 순간들이 많지 않다면 나는 누군가가 만든 음식에 의해 살아온 몸이지만, 내가 나의 음식들을 빠르게 할 수 있고 차려줄 수 있다면 나의 몸도 나에 의해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더해서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자신 있는 음식을 맛있게 대접해 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 행복은 내 집에서 일어나는 작은 프로젝트를 완수할 때마다 더욱 커질 수 있다. 나의 삶에 놓는 작은 다이닝 그릇 하나가 계속 추가되는 셈이다.


어찌 됐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먹을 예정이지만, 내가 채우는 나의 그릇에 나의 일상이 담겨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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