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란 숫자는 현재를 회고하게 만드는 숫자인가 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재난문자처럼 불안감이 간헐적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아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자신 있게 하지 못해서였기도 하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저마다의 잘 사는 법은 다르다. 누군가는 가고 싶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 무리 없이 일하며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자기가 도전하고 싶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것, 또 다른 누군가는 워라밸을 적절히 지키며 취미를 곁들인 삶을 사는 등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잘 사는 법을 멀리한 채 나는 나만의 '잘 사는' 기준을 세우고 실천하고 싶었다. 그 기준은 아래와 같았다.
체력을 관리하면서 해야 하는 일(업무적, 개인적)에 대한 영역에서 인풋, 아웃풋을 쌓아가는 것, 그리고 잘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불안감이라는 놈은 내가 세운 잘 사는 기준을 따랐는가의 판독을 끝내고 나서야 사라졌다. 내가 세운 기준이기에. 완벽히 잘 사는 사람보단 잘 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30대의 불안감을 없애는 방법 중 하나였다. 2022년 1월, 기준을 세웠고 어찌어찌 11월까지 와버렸다. 아 너무 빠르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편이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과 경험을 되새김질하려면 기록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잡은 기준을 바탕으로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하는 시간이 올해를 잘 보내주고, 내년을 잘 보내기 위한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억력이 좋지 못해 기록해야 암담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
1~2月, 업무적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던 순간들, 그리고 끝낼 수 있었던 취미
올해 남은 휴가시간은 약 300시간(37.5일)이다. 야근을 많이 할수록 휴가 시간을 보상으로 받는 구조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잘 못 쉬고 야근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직장인들에겐 잘 쉬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지만 그 미션을 보기 좋게 수행하지 못했다. 야근의 이유는 업무관리와 효율을 지키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1월에는 인턴 분과 함께 다른 팀과 협업하여 오프라인 파트의 제안서를 작성했었는데 그때 야근이 많이 발생했다. 제안서의 앞단에서 인사이트를 정리하고 뽑아내는 능력,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 등 모든 부분에 미숙함이 많아 고민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투입한 결과였다.
한 줄 카피라도 앞단에서 그 카피의 힘을 싣는 제반 과정에 해당하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온오프라인 캠페인 인풋을 쌓아서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을 빠르게 구조화시키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사내 디지털 드로잉 동호회 <내일도 드로잉>을 운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얘가 이런 것도 했었어?"의 범주에 들어가는 활동이라 재밌었던 것 같다. 물론 그림을 잘 그리진 못한다. 잘 못 그린 그림으로 생각할지라도 굿즈로 만들어 증정하면 그 의미가 클 것 같아 디지털 드로잉 그림을 취합해서 굿즈로 제작해주는 활동을 했었다. 인스타그램도 운영했으니 궁금하면 들어가 보시길~ 1년 간 운영하며 만든 드로잉 굿즈는 4개이다. 1년 간 운영도 해봤지만.. 디지털 드로잉은 내가 좋아하고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란 걸 느껴서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1년 간 사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오래 할 수 있는 취미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도 했고, 구성원분들께 나눈 것도 많아 뿌듯했다.
21년~22년, 1년 동안 운영했던 디지털 드로잉 동호회 제작 굿즈들(자체 드로잉)
3~4月, 업무적 성과 그리고 책과 친해지기
4월에 종료된 프로젝트 중 나와 고객사 모두 만족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기존에 하던 유스마케팅을 토대로, 온오프라인 라이브 행사, 온라인 교육 주관 등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프로젝트였었는데, 4월에 종료된 이후 연속으로 운영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계속 이어서 운영해달라는 말이 만족했다는 백 마디 말보다 더욱 신뢰의 근거로 느껴졌다. 신뢰를 얻은 것도 좋았지만, 업무를 통해 배운 것을 잘 써먹었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만족했던 과정이었다. 이제 여기서 나만의 감각을 얹어나가야지.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고 얘기해보는 모임에 들어가서 2주에 1권씩 책을 읽었는데, 소설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오래 들겠구나 생각했다. 4명 중 3명이 소설을 좋아했는데 그 편독가가 나였다. 읽기 힘들었지만 나름 열심히 읽었는데 시도해보고 나니 친해지기 더욱 어려운 분야라는 걸 느꼈다. 읽어봤기에 안 맞는다는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나 "요즘 사는 맛"같은 에세이를 보면서 문체나 표현 방법에서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어쩜 그리 표현을 쫀득하게 하는지.. 문체의 매력이 돋보이는 문장을 보면 그 표현력에 감탄하며 문장을 훔쳤다.
언바운드,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는 내가 추천함..
5~6月, 이불 박차고 일어나기, 그리고 공놀이 시작
아침의 기적, 6시에 일어나는 게 유행이랜다.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요지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아침 시간에 나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주로 집 앞의 경의선 숲길에서 뛰었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더욱 활기 있게 살 수 있었다. 업무 할 때 집중도 잘 되었고 체력이 많이 올라갈 수 있는 시기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침에 땀 흘리고 샤워하면 기분적으로 상쾌한 느낌을 한 움큼 가지고 출근할 수 있었다. 멘털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많이 도움 되는 시기였다. 6시간 이상 수면시간을 지키면서 아침에 뛰는 것은 이후에도 가끔씩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드로잉을 그만하게 되면서 새로운 취미를 찾다가 테니스를 시작했다. 죽기 전에 즐길 수 있는 운동과 다룰 수 있는 악기는 하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테니스를 골랐는데 지금까지 흥미 있게 잘 배우고 있다. 좋아하는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과정 자체도 재밌었다. 지금은 1달에 1번씩 실외 테니스장에서 치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치고 싶다.
돌아보니 일적인 스터디와 취미, 건강을 위한 활동들을 많이 했었던 6개월이었다.
정리해보니 친해질 수 없는 것과 좋아하게 되는 것을 뚜렷하게 하고 인풋을 쌓을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 다시 보니 업무적인 커리어의 투자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리를 해보면서도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