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할 때 할 수 있는 말
벌써 50일이나 지났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첫 안식월이 끝났다. 2개월 간 회사를 출근하지 않은 셈. 지나고 나서야 그 속도가 체감되듯 짧지 않은 시간의 속도가 새삼스럽다. 그간 뭘 했냐고 나에게 묻기 전에 쉬는 기간 동안 뭘 하고 싶었냐고 돌아보기로 한다.
혹자는 쉬는 것마저 가치를 매기냐고 하겠지만, 잘 쉬는 것에 대한 가치를 매김으로써 내가 이후에 더 잘 쉴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쉬는 기간에도 여러 가지에 도전하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시간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잘 갈무리했는지는 돌아보는 것이 이후의 나의 쉼에도 갈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안식월이 시작되고 나서 이번 안식월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두었는데, 그것들을 잘 실천했을까 생각해 본다.
다음은 쉬는 기간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이다.
① 서로의 취향을 담은 공간 만들기
② 생애 첫 방문인 이탈리아에서 감상과 사진을 기록하기
③ 연간 목표를 되돌아보고 올해의 목표 재설정하기
④ 끝내주는 요리 직접 만들어먹기
[편히 쉬어가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
사실 이번 안식월은 내 인생의 한 꼭지인 결혼을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 식을 울리기 1주 전 안식월을 시작했고, 휴식이 시작되자마자 혼자 살던 자취방에서 용산의 신혼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결혼하기 전에도 각자의 집에 자신의 취향을 담았던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반반씩 섞은 우리만의 거처를 만들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우리 집스럽게 꾸미는 것이었다. 다른 집과 같은 화이트 톤 무드의 적당한 가구나 집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원목 소재의 가구들과 아내가 좋아하는 색감의 가구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었다. 내 입맛대로만 꾸미면 되는 나의 자취방이 아닌 아내와 함께 사는 공간의 무드를 유지하며 우리의 취향을 넣는 게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다. 자취를 하던 나의 방은 우드 소재 가구가 있는 코지한 초록색 포인트 컬러의 공간이었고, 아내의 집은 화이트 톤의 깔끔한 모던 룸이었다.
그렇게 안방은 블루/블랙 컬러의 모던 시크 룸이 되었고, 베란다는 화분이 함께하는 그리너리 한 공간이 탄생했다. 집의 모든 공간에 취향을 이리저리 덧대는 과정은 내 삶에 취미를 더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이어갈 예정이다.
아내와 나는 이탈리아 신혼여행 동안 각자의 시선으로 각 10편의 글을 업로드했다. 제목은 "그와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2주에 1번 정도 글을 쓰는 내가 1주에 2편씩, 그것도 해외여행 중 기록하려니 중간에 기한을 지키지 못할 뻔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달리기도 러닝메이트가 있으면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법이라고 했던가. 같이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을 본 적 없는 아내가 CHAT GPT처럼 뚝딱뚝딱 글을 써내는 것을 보고 나도 나의 언어로 이리저리 우리의 여행기를 완성시켰다. 아내도 총 10편의 글을 업로드했는데, 그 글은 지금 우리에게 여행 앨범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신혼여행 당시 느꼈던 우리의 감상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나는 1년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만다라트 형식으로 기록하곤 하는데 상반기의 마무리를 맞아 점검을 해보기로 하였다. 호기롭게 세운 2025년 1월의 목표 중 아직 달성하지 못한 것들이 눈을 아른거렸다.
그래도 상반기에 계획했던 것들의 절반은 진행 중이거나 이미 완료했다는 사실을 보고 안도했다. 확실히 1년의 목표 기준이 있다면 현재 가야 할 방향성을 알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아직 체크되지 못한 것들에 더욱 집중하는 하반기가 되도록 살아봐야겠다.
마지막은 끝내주는 요리 직접 만들어먹기. 이제 혼자가 아닌 둘이 되고 나서 우리의 식탁은 제법 풍성해졌다. 여기저기서 챙겨주는 반찬들과 아내가 시킨 신선한 채소들, 그리고 주방 옆에서 물과 햇빛을 듬뿍 받고 자라는 파까지, 내가 흔히 보지 못했던 식재료들이 우리 냉장고를 채우는 순간들이 많아졌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그 와중 손이 꼼꼼하고, 복잡한 요리도 뚝딱뚝딱 잘 만들어내는 아내의 덕을 많이 본다. 나의 식탁의 접시들은 햇반이 솥밥으로 바뀌고, 차가웠던 반찬들은 따뜻한 온도로 식탁에 놓였다.
내 요리 지분은 20~30%를 오가는 수준이지만, 우리가 먹을 음식을 해 먹는 행위에서 오는 뿌듯함이 있다. 일을 시작하면서는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주말의 주방은 꽤나 복작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탁의 계절도 변하도록 지속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대단한 것을 하지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지도 않은 이 휴식기를 통해 바뀌어가는 나의 하루들을 가꿀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잘 쉬었냐라고 한다면 "푹 쉬고 돌아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언제 쉬었냐는 듯,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바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잊고 있었던 치열함을 다시 몸에 새기면서 다음 휴식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