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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자 하면 남을 것이다.

무엇이든 남겨보려는 격동의 7월을 보내며

by 래리

6월에 글쓰기 리추얼 플랫폼 '밑미'를 신청했다. 도서 출판사와 함께 하는 '별게 다 글쓰기'로 매일을 기록하는 리추얼이다. 신청할 때의 동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매일을 남겨보겠다는 포부보다는 일로 바쁜 일상에 나의 감상 하나 남겨봤으면 한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하루에 짧은 글 하나정도는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스친 판단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바빠지기 전까진 말이다. 7월 주중에는 4가지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있는데, 9-23시 워킹타임으로 일을 하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 씻고 누우면 하루가 지나가기 일쑤였다.


글을 데일리로 남겨야 하는 리추얼이지만 남기지 않는다고 해서 페널티를 받진 않아서 주에 3회라도 남겨보겠다고 한 게 약 2주째. 글로 본 나의 하루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찌들지 않으려는 발버둥이 느껴지는 듯하다. 다음은 나의 7월의 감상


게으른 사람의 책임감 이용법
07월 07일 월요일 기록

밤 11시, 퇴근길엔 매미가 운다. 어항 속을 걷는 듯한 습도의 거리를 5분 동안 걷다 보니 등줄기는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간다. 입사 이래 가장 긴 휴식인 안식월을 다녀와서 업무에 복귀한 지 2주 정도가 지났다. 쌓였던 일들은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반긴다. 가장 긴 휴가를 보낼 때 드문드문 느끼는 한가함에 "이제는 일해도 되겠는데?"라는 말을 꺼낸 것이 화두였다. 오늘만 해도 이른 아침 출근한 것이 무색하게 퇴근을 하는 지금 시간은 23:10을 가리킨다. 이제까지는 업무로 바쁠 때면 퇴근 이후엔 내 몸의 생각하기 버튼을 끄곤 했다. 집에 가는 30여분 남짓에는 유튜브나 SNS를 보면서 채우지 못한 도파민을 수집하는 것을 하루의 유일한 낙으로 여겼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낸 하루의 끝은 묘한 아쉬움의 여운이 남았다. 하루들을 일로 채운 나의 시간표에 대한 동정일지,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들에 대한 아쉬움의 여운일지 모르겠다.


아쉬움으로 하루의 끝을 곱씹고 싶지 않아 글쓰기 리추얼에 신청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여 년의 인생 동안 깨달은 사실은 나는 본성이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독자적인 의지로는 무언가를 지속하기가 힘든 사람. 그래서 나는 커뮤니티의 힘을 애용한다. 혼자 달리기 어려워 러닝 크루를 3년 동안 지속하고 있고, 혼자 글을 쓰기 어려워 글쓰기 모임도 2년 동안 이끌고 있다. 나에게 게으름이란 천성을 부여했음에도 책임감이라는 감정은 나를 움직이는 것 같다. 마치 23시까지 야근을 하는 것처럼. 글쓰기 리추얼을 하는 동안에는 나의 하루에도 책임감을 부여하려 한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열거하고, 조립하면서 하루를 꿰는 일들을 하는 책임감 말이다. 그렇게 만드는 하루는 나에게 아쉬운 여운이 아닌 "그럼에도 해냈음!"이란 기분 좋은 여운을 주지 않을까.


주말을 더 달달하게 만드는 재료
07월 11일 금요일 기록

여름이 좋은 건 시원함이 있어서라는 말이 있다. 풍족이라는 말은 결핍했던 자가 진정으로 만끽할 수 있듯, 불편한 상황을 견디다 보면 편안한 상황이 더욱 달콤해질 때가 있다. 나에겐 이번 주말이 그러했다. 나무에 붙어서 계속 울어대는 매미처럼 사무실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나날들을 보내니, 쉬어간다는 사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스치는 여름 바람의 시원함도 느껴보고, 깜깜해진 동네를 눈으로 담아본다. 매일 오가던 거리의 느낌도 편안해진 마음에서는 곱씹을수록 달콤한 여운이 깃드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진정으로 치열하게 보내는 주중은 맘 놓고 느슨해질 주말의 준비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올려다본 밤하늘의 별이 더욱 반짝이게 보인다.

화면 캡처 2025-07-20 120018.png


이후에도 남겨질 나의 감상 기록들을 보면서 습하고 덥고 치열한 7월의 순간들을 남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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