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갈수록 짙어지는 글의 풍미
오랜만에 책장에서 5년 전에 쓴 나의 필사를 발견했다. 오랫만에 본 나의 글은 긴 시간 묵혀둔 장독대에서 장을 꺼내듯 그 향기가 더욱 진하게 배여있는 것 같다. 그래, 책의 좋은 구절을 곱씹고, 그리고 음미하고 싶어서. 잘 쓰지 못하는 글씨를 끄적끄적 샤프로 써댔던 한 시절이 있었다.
글씨를 쓰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몇 번 입력하면 완성되는 나의 자음 모음을 하나 하나 눌러 쓰는게 꽤 힘이 드는 일이란 걸 알게 된 지금의 나는 글로 나의 가치를 남겨두는 것이 낯선 일이 되었다. 차일피일 내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을 미룬 지금에서야 보니, 예전에 내가 정성스레 눌러담았던 글씨에는 나의 진심이 담겨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직업이란 뭘까, 내가 좋아하는 직업이 무언가 생각하던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감명을 받았더랬다. 내가 발견한 나의 구겨진 필사에선 그때의 내가 읽고 본받고 싶어한 그의 철학이 담겨있었고, 그 옆엔 빨간 글씨로 그 글을 읽고 나서의 감상이 기록되어있었다.
"완성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미숙하고 결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의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밖에 안나왔다, 라고. 하지만 첫 소설을 어떻게든 일단 내가 납득할 수있는 모양새로 끝까지 써내면서 나는 하나의 '중요한 이동'을 이루어냈다는 실감을 얻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53P"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한다면, 견뎌야 하는 필수의 미숙이 있다. 나의 미숙함을 직면하고, 왜 그랬었는지 자책해가야 할 무수히 많은 순간의 시간. 그 무수한 미숙을 견뎌온 사람많이 완숙의 향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미숙도 그러한 과정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미숙함을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미숙함을 견디는 것이다.
사실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무엇인가에 완벽하다고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이 많을 수록 보이는 것이 많듯, 평생을 자신이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고 말이다. 오랜만에 꺼내본 내 글씨 장아찌를 읽고 최근에 느꼈던 감정의 여운이 풀렸다. 꽤 능숙한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던 나의 5년 후도 아직은 미숙한 사람이었음을 견디기가 힘들었던 오늘의 나에게, 5년 전의 내가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나는 또 미래의 나에게, 오늘의 나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