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 은 Mar 20. 2019

랍스터를 생각해봐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산문

“아마 랍스터는 전두엽 절개 환자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 환자들은 당신과 나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 「랍스터를 생각해봐」 중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는 1962년 뉴욕주의 이타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일리노이에서 성장한 월러스는 암허스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애리조나 대학에서 미술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 철학박사 과정에 잠시 재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작품으로 제출한 소설로 등단한 뒤, 1996년 두 번째 소설『무한한 농담』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힌다. 소설과 산문작가로 꾸준히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했다.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용례 담당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2008년 46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의 클레몬트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의 아버지는 인터뷰에서 월러스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말했다. 유작으로 남긴 미완의 소설『창백한 왕』이 2011년 출간되었다. 월러스는 심오한 관찰력과 뛰어난 구성력, 문법과 어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고 철학적으로 진중하며 문화적으로도 세련된 가장 현대적인 글을 썼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토마스 핀천이나 돈 드릴로 등 포스트모던 작가를 계승하면서도 실험적이며 모험적 스타일을 구사하는 젊은 세대 작가를 대표한 월러스는 물질세계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묘사에 뛰어나면서도 인간의 감정에 대한 진지한 접근, 도덕적 문제에 대한 성찰과 함께 20세기 미국 문화를 날카로운 통찰로 분석, 서술하는 것에 능한 작가였다.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에세이「랍스터를 생각해봐」는 미국의 메인 주에서 매년 열리는 랍스터 축제에 유명한 요리잡지『미식가』의 요청으로 참석한 경험을 쓴 글이다. 일반적인 요리나 음식축제에 관한 정형화된 글과는 달리, 랍스터잡이와 요리, 축제행사의 진행과정에 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문명비판적 전망을  제공한다. 잡지 편집장이었던 조슬린 주커만의 애초 계획은 월러스를 영국의 옥스퍼드로 보내서 음식 역사가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글을 쓰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하지만 월러스의 글을 잡지에 꼭 싣겠다는 마음에 차선책으로 메인주의 랍스터 축제를 선택한다. 월러스는 그녀의 제안을 최종적으로 수락한 뒤 랍스터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그의 부모와 여자 친구를 대동한다. 월러스는 일을 맡게 된 직후 해당 잡지에서 게재된 랍스터 관련 글을 모두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글쓰기가 기본적인 연구와 조사, 사실의 확인에 근거해야 진실해질 뿐 아니라 박진감을 띠게 된다는 점을 월러스가 주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원칙에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월러스는 작가로서의 전문성과 책임의식도 갖추고 있었다. 월러스가 마침내 랍스터 축제에 관한 글을 완성해서 보냈을 때, 분량이 보통 잡지에 싣는 것보다 길었던 데다가 왜 사람들이 랍스터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삶는가라는 문제를 냉정하면서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통상의 음식 관련 글에서 보기 힘든 신랄함과 도전적 어투,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등이 두드러졌다. 주커만은 월러스의 글이 마음에 들었지만 책임편집자 루쓰 레이클이 문제였다. 레이클은 몇 군데의 어조를 바꾸면 괜찮다고 판단했다. 처음에 월러스는 레이클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쓴 것을 바꿀 의향이 없고 편집진이 손을 대려 한다면 싣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양자가 타협한 결과 신랄한 어조를 좀 덜어낸 최종본이 잡지에 실리게 된다. 월러스는 초반의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편집자의 수정 제안이 글에 필요한 부분임을 납득한 뒤 받아들였다. 이런 월러스의 태도는 전문작가로서 지켜야 할 원칙주의와 엄정함과 함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협상을 할 수 있는 판단력도 시사한다.

 


  「랍스터를 생각해봐」는 많은 작가들과 비평가들이 '베스트 에세이'로 손꼽는 글이다. 월러스의 문장과 스타일이 탁월한 것은 물론이지만, 이 글은 무엇보다 월간지에 실리는 요리 평과 여행기 등이 갖는 식상함을 넘어서 문명에 대한 성찰적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7월 말이면 메인 주의 해안지역 두 도시 캠든과 락랜드에서 랍스터 축제가 열린다. 랍스터와 관광은 이 지역의 두 가지 중요한 산업이었다. 월러스는 2003년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하버파크에서 열린 제56회 랍스터 축제에 참여한다. 당시 축제의 주제는 “등대, 웃음, 랍스터”였다. 대략 8만 명 정도가 참여했을 정도로 이곳의 랍스터 축제는 전 세계 음식 관련 축제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2003년도 축제에선 유명 밴드의 콘서트와 미인대회가 열렸고 토요일엔 가두행진이, 일요일엔 달리기 경주와 요리대회가 열렸다. 랍스터 축제를 대표하는 행사는 중앙 시식 텐트에서 벌어진다. 이곳에서는 2만 5천 파운드의 메인 주 랍스터를 ‘세계에서 가장 큰 랍스터 찜기’에서 직접 요리해서 판다. 찜요리 외에도 각종 랍스터 요리가 제공되는데, 샐러드, 파스타, 롤, 만두, 튀김, 수프 등이다. 랍스터 요리법, 먹는 법과 그 외 재미난 상식 등이 팸플릿에 실려 있고, 요리대회 우승자의 레시피를 공식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이상의 축제 관련 정보를 제시한 후 월러스는 랍스터가 어떤 동물인지를 백과사전적 지식과 과학을 통해 전달한다. 랍스터가 매우 큰 바다의 '곤충'이라는 사실을 밝힌 뒤 현대식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음식으로 대접받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랍스터 요리 역사를 추적한다. 19세기까지 미국에서 랍스터는 질 낮고 영양도 부족한 음식으로 분류되어 기피되어 왔다. 아메리카원주민들에겐 ‘벌레’라고 불리기도 한 랍스터는 월러스가 참석했던 축제에서 맛 좋고 영양가 높을 뿐 아니라 값이 비싸다는 기존의 편견을 바꾸기 위해 가격도 적당하면서 고급 음식으로 선전되고 있었다. 월러스는 축제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중앙 시식 텐트의 저녁식사는 스티로폼 접시에 담겨서 제공된다. 함께 따라오는 음료수는 얼음도 없이 밍밍하며 역시 스티로폼 컵에 담긴 커피는 편의점 커피 맛이었다. 수저는 플라스틱이었다(랍스터의 꼬리 부분 살을 빼먹기 위해 필요한 길고 얇은 포크는 제공되지 않았다. 물론 몇몇 세련된 손님들은 자신의 포크를 직접 가져왔다). 냅킨 조차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서 먹을 때 지저분해지는 랍스터를 특히 다양한 나이에 따라 운동신경의 발달이 천차만별인 아이들 틈새에 껴서 벤치에 앉아서 먹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통로를 가로막는 커다란 아이스쿨러에 몰래 맥주를 담아 들여오는 사람들이나 어느 틈엔가 직접 가져온 일회용 테이블보를 꺼내 테이블에 깔아놓고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런 얘기를 시시콜콜히 열거해 봐야 그렇고 그런 불편함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축제는 이렇게 신경을 긁는 사소한 실망의 연속이었다. 가령 본부의 간판에는 접이 의자가 필요하면 20달러를 내야 한다고 크게 쓰여 있다. 북쪽 텐트에서는 요리대회가 끝나고 나눠주는 결승전 진출자들이 제공한 마시는 감기약 용 컵 정도 크기의 요리 샘플을 얻어먹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댔다. 수도 없이 찬사를 받던 미인대회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지루하게 늘어졌고 지역의 스폰서들을 향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감사와 헌사의 말로 가득했다. 결국 이 축제는 요리라는 이름을 내세운 그저 보통 수준의 지방도시 잔치 정도에 불과했다.”

     

월러스의 이어지는 관심은 랍스터 요리법인데 그중에서도 끓는 물에 살아있는 랍스터를 통째로 집어넣어 삶는 것이다. 이 요리법의 특징은 싱싱한 랍스터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으며 레스토랑에서 뿐 아니라 가정집 주방에서도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에서 월러스는 랍스터 축제 관계자뿐 아니라 랍스터를 즐기는 소비자들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미각을 위해서 의식 있는 생물을 산 채로 끓여먹는 게 옳은 일인가라고.


동물 처우에 관한 윤리문제 활동가들과 랍스터 관계자들 사이에는 랍스터가 의식을 가진 동물인가에 대한 공방이 벌어져왔다. 랍스터 전문 레스토랑에 한 번쯤 가봤거나 랍스터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랍스터를 둘러싼 이 쟁점이 생뚱맞거나 우스꽝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1990년대부터 메인주의 랍스터 축제를 보이콧하는 운동이 시작되었고, 월러스가 참석한 56회 축제 당시에도 운동가들이 행사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논쟁은 랍스터가 의식을 가진 동물이냐는 문제에서부터 고통을 느끼는 주관적 경험에 관한 문제로 변화해갔는데, 월러스는 어떤 과학적 판단을 내려서 어느 쪽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려고 하기보다는 이 문제가 월러스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 즉 다른 동물을 음식으로 먹는 인간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다.

     

“더 중요한 문제는 동물학대와 섭취에 관련된 문제가 그저 복잡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문제라는 점이다. 적어도 나를 포함해서 다양한 음식을 즐기기는 하되 자신을 잔인하거나 무정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해질 터이다. 이 문제를 대하는 나의 입장을 말하자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불쾌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회피해 왔다. 내가 보기에는『미식가』를 읽는 수많은 독자들도 고작 매달 뒤적이는 음식잡지의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 문제를 열심히 생각하거나 자신의 식습관에 내포된 도덕성을 평가받고 싶어 하진 않으리라. 하지만 이 글의 주제가 2003년 메인 주 랍스터 축제에 참여한 소감과 랍스터를 먹는 미국 군중들 사이에서 며칠간 보낸 뒤 랍스터와, 랍스터를 사 먹는 행위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는 일이니만큼 이와 관련된 도덕적 문제를 피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리라.”

 

그가 말하는 도덕적 문제란 바로 이것이다. 단지 랍스터를 산 채로 끓인다는 사실뿐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즉석으로 나만을 위해서 요리를 해준다는 점이다. 축제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랍스터 찜기였다. 월러스는 육식을 하는 종으로서의 인간이 상대 동물을 먹기 위해 살육해야 한다는 당위와 연결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 모든 추상적 지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랍스터가] 미친 듯이 찜기 뚜껑을 두들겨대고 찜기 가장자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사실은 남는다. 스토브 옆에 서있으면 찜기 안에 있는 생명체가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고통을 회피하거나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보통사람으로서 내가 보기에 찜기에서 랍스터가 보여주는 행위는 그것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으며 따라서 진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러스의 에세이가 제시하는 핵심 주제는 ‘미식’이라는 행위에 결부된 윤리이다. 그는 동물 권리보호활동가의 방식과 달리, 축제라는 행사가 자아내는 흥겨움과 웃음, 지역공동체의 자부심과 경제적 이윤추구 이면에 웅크린 난감한 질문을 포착하려고 한다. 그 문제는 동물들이 우리보다 도덕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어떤 윤리적 체계로도 설득하기 어려운 믿음이다. ‘미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과 대면해야 하지만, 월러스가 지적하듯 그 자신을 포함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줄곧 회피하고 싶을 뿐이다.

     

 “어쨌거나 세계에서 가장 큰 랍스터 찜기 바깥에서 거품이 일어나는 탱크 옆에 서서 갓 잡은 싱싱한 랍스터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인 채 무기력하게 그들의 갈라진 발톱을 흔들거나 뒤쪽 구석에 몰려서 웅크리고 있거나, 혹은 당신이 다가가면 미친 듯이 유리벽을 긁어대는 것을 보고 있을 때 랍스터들이 불행하고 혹은 무서워한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저급한 감정이라도 ...  여기에 저급성 문제는 왜 끼어드는가? 이 고통이 원시적이고 발화되지 않은 형태를 띤다 해도 그 결과로 나온 음식에 돈을 지불하고 먹기 위해서 그런 고통을 가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위급하지 않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그의 글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랍스터 축제에 대한 기본 정보를 얻게 된다. 월러스의 의도와 별개로 그의 글은 월간지용 글에 요구된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자연세계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그에 따른 윤리감에 관한 월러스의 비판적이며 지성적인 관찰과 사색은 축제에 얽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글의 취지와 달리 거대한 랍스터 찜기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독자라면 한여름의 메인 주 해안도시를 거닐며 랍스터를 씹을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 상상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곳에 가서 바닷내음을 맡으며 축제의 소비향략적 겉치레를 넘어서 미국 땅의 역사와 문화에 얽힌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함축된 인간됨과 책임의식 등을 월러스의 글을 떠올리며 사색해봐도 좋겠다.

     



*이 글은 모 문예지에 미국 문학 기획연재로 수록된 원고의 일부입니다. 인용된 부분은 필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고, 월러스의 에세이는 동명 에세이집 <랍스터를 생각해봐>에 수록되어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딪치며 쓰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