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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Mar 20. 2019

여름과 여름 사이

나의 알래스카

길을 떠나면 어디서든 사람을 만난다. 여행은 사람을 만나러 떠나는 것이다. 이곳의 사람을 남겨두고 그곳의 사람을 만나는 경험. 그러므로 사람을 피해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 보다는 낯선 곳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성공하게 될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로, 그것이 여행이다.


알래스카 여행이라면 당연히 오로라와 빙하와 연어, 곰 - 여기에 그 큰 몸과 긴 다리로 천천히 걸어가는 무스와 바닷물에 동동 떠있다가 쏙 사라지는 오터를 볼 수 있다면 그건 덤이다 - 을 떠올릴 것이다. 크루즈를 해도 좋고 알래스카 남부 피오르 해안을 따라 관광선을 타고 가서 빙하가 쩡!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상상을 해보라. 해외여행이 붐인 요즘, 그 수많은 매력적인 여행지들 어디쯤엔가 알래스카를 마음에 꼽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  


'어쩌다 알래스카인'(accidentally Alaskan) 이 되어 이곳 주민으로 산지 몇 년째. 알래스카를 여행지보다는 생활로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알래스카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었다. 알래스카에서 살면 매일 매 순간 야생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문명의 선 안에서 일상을 꾸려가려고 애쓰는 동류 알래스카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야생과 문명 사이의 선은 누가 어떻게 긋는건지 궁금해졌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자연 풍광, 이국적 경치와 지역의 명소, 로컬 푸드와 진기한 물품들을 기대하게 된다. 알래스카도 그런 곳이 많다. 아니, 알래스카의 전 지역은 관광산업에 최적화되려고 애쓰는 것 같다. 여름이면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야 근 6개월 이상의 겨울을 버텨낼 수 있다. 겨울이면 오로라와 개썰매 관광으로도 한몫 볼 수 있지만, 그건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모든 일이 관광에 의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회는 관광에서 더 빈번하다. 그러니 알래스카 땅과 야생의 자연은 관광객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건 이곳에 발를 딛게 되는 순간 알게 되는, 오픈 시크릿이다.    


'알래스카 여름'이란 표현이 있다. 여름이 너무 짧아서 생긴 말이다. 업계에서 한시적 상승세나 반짝 경기를 일컫는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알래스카 여름은 짧지만 완벽하리만치 좋다.  지금은 3월 - 벌써 여름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알래스카 주민들은 이미 여름맞이를 시작했다. 여름은 왔나 보다 하면 금방 사라지게 될 것이므로 미리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여름의 그 덧없음은 오로라빛과 닮았다. 어느 날 검은 겨울밤에 춤추듯 초록빛 리본이 일렁이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그 신기루 같은 빛. 그 여름을 지금, 기다린다.


솔직히 나는 알래스카의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한다. 지긋 지긋해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연인 같다. 한두 차례 이곳에서 겨울을 난 후 지인들에게 알래스카 겨울을 살아보라고 조심조심 권해보기도 한다. 조심스러워 하는건 그리 썩 좋은 제안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고생은 따놓은 일이니까. 하지만 또 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뭐라 말할 수없이 신비로운 경험이다. 그건 정말 와보지 않으면 모르는, 진짜 비밀 같은 것이다.

 

알래스카의 여름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와봐야 확인할 수 있는 비밀이라면  알래스카의 겨울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말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해봐야 상대방에게 미처 이르지 못한 채, 마치 영하 40도의 추운 겨울날 밖에 나가 뜨거운 물을 뿌리면 순식간에 얼어붙어 떨어져 산산이 부서져버리는 한 컵의 물처럼 그렇게 부서져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릴 말이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비밀이 되는, 그런 비밀스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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