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회색지대>

by 메아리

우울한 감정이 아니라 생각이 문제라며

약이 바뀌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좋아지는 것 같지만

애로사항이 있다.


가장 큰 건 마음을 보는 방식의 차이다.

바꾸기 전에는 이러했다

아름다운 느낌과 광경을 관측할 때는

고흐의 별을 헤는 밤이

나의 우울이 생명을 강탈하려 할 때면

뭉크의 절규가 보였는데

그것들을 볼 때마다 눈이 너무 시려 아프지만

아름다움과 공포에 눈을 뽑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힘들지언정 글은 뚝딱뚝딱 나왔다.

잘 쓰는 것과는 별개로.


약을 바꾼 지금은 이러하다.

그 그림들에 시너를 끼얹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내 눈에서 꿀럭거리며 다른 세상을 보던

눈 안 렌즈들이 작동을 멈추었다.

마치 야간투시경을 쓰고 작전하다 갑자기 불이 켜진 것처럼.

그래서 많은 상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든다.


동굴에만 살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눈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깊은 숲 속에서 별빛 달빛만 보아도 눈이 시렸는데

들판을 나가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라는 원칙은 알고 있지만...

아직 앞이 안 보여 부딪히고 넘어지는 것 같다.

우울한 회색빛이 사라지면 살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색이 뿌연 회색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서 다시 렌즈로 색감과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 삶이 흙 묻은 돌덩이일지언정

보는 세상만큼은 제임스 웹처럼 멀고 선명하게 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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