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자기관측기>

by 메아리

꿈속에선 무엇이든 일어난다.
고로, 나는 내 꿈 안에서 인간이 아니다.

내 머리는 검푸른 태풍을 담은 투명한 헬멧
천둥 번개와 바람이 바이저를 깨뜨릴 듯 내리쳐도
머리 밖은 이상하게 평온하다.

내 몸은 붉은 녹이 떨어지는 갑옷
톱니바퀴 소리는 요란하고
얻어맞은 듯 움푹 파인 곳 사이로
유압 오일이 새어 나오지만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다.

내 오른팔은 거대한 흑요석 기둥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서 있는 표면은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것을 저밀 듯하고
당연히, 악수할 손은 없다.

내 왼팔은 누런 진액이 떨어지는 구렁이
반쯤 부러진 독니에선 독이 뚝뚝 떨어지고
꿈틀거리며 고름으로 가득 찬 몸을 흔든다.
떨어진 진액은 땅마저 녹인다.

내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을 까마득한 예전에는
살갗들이 꿈틀거리기도 했고,
몸통처럼 끼릭거리는 걸로 가득하기도 했다.
현재는, 검은 모래가 섞인 바람이
그 형체로 짐작되는 곳을 휘감는다.

한 때는 나마저도 내 독을 이길 수 없어
망원경을 썼다
지금은 더 자세히 관측하러 걸어가고 있다.

독 내음이 폐를 녹이고
흑요석 조각이 나를 저미고 있지만
나는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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