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 New order

by 메아리

한 왕국이 있었다.


본디 왕이 있었어야 했으나
왕홀은 탈취당하고 왕관과 부딪혀 깨어졌으며
반쯤 깨진 왕홀을 쥐고 나타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왕을 시해한 자를 잡아야 하니
자신이 그동안 너희 백성들을 돌보겠노라며
스스로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37년 동안 섭정은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섭정은 자기만을 위해서 일하지는 아니하였다.
사리사욕은 없이 일했지만, 백성들에게 항상 말하였다.
너희는 약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제물에 불과하다고.


실제로 섭정은 어떠한 마법을 신봉하는지는 모르나
소문에 의하면 산채로 제물을 태우고
그 심장을 어딘가에 보관하였다.


어느 날, 대군이 왕국에 쳐들어왔다.
당연히 병력도, 시설도 부족했다.
섭정은 그저 제물을 불태울 뿐이었다.


그때 대군의 좌우로 못 보던 군세가 일어났다.
한쪽에서 뾰족하게 돌진하는 기마병들의 발소리가
마치 진고처럼 울려 퍼지고,


반대쪽에선 이은 흔적이 역력한 왕관을 쓴 자가
날카롭고 유려하게 벼려진 롱소드를 들고 소리친다.


그러자 발 없는 자들이 나타나 사라진 소리만큼
냉기를 흩뿌리며 적들을 관통한다.
그리하여 왕국의 멸망은 겨우 면하였다.


섭정은 위엄을 지키려고 왕홀을 높이 들었으나
절반이 없는 왕홀보다 다시 이어 붙인 왕관이 더 밝아
백성들은 무엇이 진짜인지 금방 알게 되었다.


왕관을 쓰고 온 자는 적법하게 왕좌에 앉고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지만
섭정만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몸에 기름을 얹고
스스로 마지막 제물이 되며 첨탑에서 추락한다.


새로운, 본래의 왕은
새로, 있었어야 할 법령을 백성들 앞에 선포한다.


첫째, 백성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해하지 않을 것.
지금까지 투표로 제물이 되었으므로.


둘째, 토의하며 존중할 것.
일방적인 피고와 원고만이 있었으므로.


셋째, 함께 밀어주며 나아갈 것.
서로를 걸고넘어지며 배급에만 몰두하며 살았으므로.


이제 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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