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아길라르 궁전(palau aguilar)>을 개조해 만든 <피카소 미술관(Museu Picasso)>을 보고, 피카소가 즐겨 찾았던 레스토랑 4 Cats(Els Quatre Gats)에서 배부르게 먹고 나니 벌써 해가 저물어 있었다.
느긋하게 고딕지구와 보른지구를 산책하기로 했다. 피카소의 그림으로 유명한 사창가 아비뇽,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알현한 왕의 광장, 뱃사람들의 성당인 <산타 델 마르 성당(Santa Maria del Mar Church)>……. 우리는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다. 솔직히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길을 잃었다.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다. 현대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컴퓨터가 고장 나면 공포에 질려 애프터서비스를 부르고, 스마트폰 열풍이 불 때는 왜 전화기에 다른 기능이 필요한 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으로 바꾼 이유도 휴대폰이 고장 나서 바꿔야 하는데 선택 가능한 휴대폰이 전부 스마트폰이어서였다.
요즘에는 관광지에서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꺼내드는 사람이 드물다. 대부분이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이용한다. 하지만 난 사용법도 모르고 배울 생각도 없었으며, 친구는 소매치기들이 무섭다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린 결국 지도를 보면서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자주 길을 잃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현지인이 거의 없는 스페인이니 길을 잃어도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었다. 지도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헤매 다니다 지쳐 골목길에서 주저앉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느리고 답답할 수 있는 아날로그 여행이 내게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진짜 여행이었다.
고딕지구도, 보른지구도, 낮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알록달록, 반짝반짝, 눈길을 잡아끌던 다양한 물건을 진열하던 상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자 어둠이 몰려들었다.
중세 그대로의 느낌을 되살리려 일부러 그런 건지 가로등도 드물었다. 누구도 그 뒷골목을 현대의 대도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했다. 어디에서 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모양인지 산 펠리프 네리 광장(Plaza de San Felip Neri)은 영화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원작으로 한 영화, 2006년 개봉)의 배경으로 쓰였다고 한다.
산 펠리프 네리 광장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년 ~ 1975년, 스페인이 정치가)의 군대가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던 곳이다. 그 가운데에는 어린 아이들도 꽤 많았다. 단단해 보이는 벽에는 움푹 팬 총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곳에 서 있자니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리고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린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섞인다. 끈적이는 피가 흘러 넘쳐 나를 덮칠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난 언제나 상처와 고통에서 도망치는 비겁자이다. 욕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까딸루냐인들은 해묵은 상처를 드러낸 채 마주하고 있었다. 드러낸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느려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문 상처의 흉터가 보기 흉해도 숨기지 않는다. 그 아물지 못한 상처도, 보기 싫은 흉터도, 지금의 그들을 만든 그들의 과거였고 그들 자신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 펠리프 네리 광장 옆 총탄의 흔적이 가득한 건물은 지금 유치원과 초등학교로 쓰인다고 한다. 아마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프랑코의 만행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받았던 상처와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방법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빨리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다시 상처를 받아 덧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앞으로는 내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볼 것이다. 그 상처가 아무리 끔찍해도 움츠러들거나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 상처가 아물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버텨낼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고 남은 흉터를 숨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내 보일 것이다. 다들 바라보아도 좋다. 그 흉터는 내가 상처를 극복하고,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