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딸루냐어로 ‘고기를 파는 광장’이라는 뜻
나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바닥, 깔끔한 진열대에 전문가의 솜씨로 가지런히 정돈된 상품보다는 약간은 지저분한 길바닥에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는 물건들이 훨씬 정겹고 따뜻하다.
지친다. 두렵다. 답답하다. 막막하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다…….
내 인생에 그런 부정적인 단어들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난 무조건 재래시장으로 향하곤 했다. 상인들은 호객을 하느라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은 흥정을 하느라 바쁘고, 가끔은 술주정꾼이 난동을 피우기도 하고, 한바탕 시끄럽고 때로는 지저분한 그곳은 내 인생과 꼭 닮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때로는 삶이 너무 힘들어 내가 죽을 것만 같아 불안할 때면 그곳으로 달려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다.
바르셀로나의 숙소는 보케리아 시장과 단 5분 거리, 하루에 두 번이나 들르는 날도 많았다.
‘유럽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 ‘보케리아 시장에 없으면 어느 시장에도 없다.’ 등의 소개가 조금은 무색할 정도로 시장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한국 라면도 팔정도니까. 형형색색의 과일과 쿠키, 무시무시할 정도로 큰 하몽(jamón, 햄, 소금에 절이거나 통째 훈제한 돼지의 뒷다리), 정말 맛이 모두 다른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올리브 반찬까지 파는 품목도 다양했다.
생과일주스는 가장 흔한 품목 중 하나인데 입구가 가장 비싸고 뒤쪽으로 갈수록 가격이 내려가다가 시장 끝에서는 입구의 반값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정가제가 시행되지 않는 재래시장이라지만 입구에서 산 생과일주스를 다 마시기도 전에 시장 끝에 닿으면 억울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보케리아 시장의 가격은 그리 싼 편이 아니기에 바르셀로나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장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맛집이 워낙 많아 식사를 하는 현지인들은 꽤 많았다.
보케리아 시장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색다른 마트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예전에 왔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나? 잘 기억나지 않았다. 신문에서 현대화를 통해 살아남은 보케리아를 우리나라 재래시장도 본받아야 한다는 사설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현대화된 재래시장에서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강렬히 느껴지진 않을 것 같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