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딸루냐 광장에서 시작해 콜럼버스 기념탑이 있는 파우 광장까지의 거리
경유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까지 20시간이 넘었던 여행시간. 다리는 당연하고 발가락 끝까지 퉁퉁 부었다. 최소한의 것만 챙겼는데도, 빈 공간이 텅텅 남아도는데도, 커다란 여행 가방은 버거웠다. 여행에 대한 기대 따위는 피곤함과 짜증에 밀려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숙소는 람블라스 거리 바로 옆. 다행히 람블라스 거리가 시작되는 까딸루냐 광장으로 한 번에 가는 공항버스가 있었다. 버스에 타고 나서도 창밖의 풍경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에 드러누워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까딸루냐 광장에 도착해서도, 숙소를 찾으려 지도를 보면서도, 그저 무덤덤했다.
그리고 람블라스 거리가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미로(Joan Miró, 스페인의 화가,1893 ~ 1983)의 모자이크가 내 발 밑에 있었다.
피카소(Pablo Picasso, 스페인의 화가, 1881〜1973)가 거닐었던 그 길 위에 내가 서 있었다.
《달과 6펜스》의 작가인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영국의 소설가, 1874~1965)이 '세계에서 가장 매력 있는 거리'로 꼽았던 그 길이 내 눈 앞에 있었다.
한여름, 무성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길거리 화가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과 행위예술가들의 다채로운 퍼포먼스가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숙소에 짐을 두고 다시 람블라스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워낙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운동은커녕 산책도 귀찮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저절로 발길을 움직이게 만드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람블라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길이었다.
개인적인 취향 차이겠지만, 나에게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는 사람들에 치이지 않으려 조심해야 될 정도로 너무 북적이고,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휘황찬란하고 현대적이지만 차가운 도시의 느낌이 강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의 뒷골목은 길을 잃을까 두려울 정도로 산만했다. 적당히 북적거리고,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단순한 이곳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는 불만투성이 나도 흠잡을 수 없는 최고의 길이다.
그 길 위에 서 있으면 저절로 힘이 났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관광객들이 내뿜는 기대감이, 무더위에도 꼼짝 않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거리예술가들의 열정이,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활기가 나를 감싼다.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1936)는 람블라스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길’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람블라스는 영원히 머물길 바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