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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 Mar 02. 2021

청사포에서

20대 초반의 전부를 쏟아부은 일을 정리하고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부산에 내려간, 11월의 어느 햇살이 내리쬐던 월요일이 있었다. 그날 나는 끝내 청사포에 다다르지 못하였다. 언덕을 넘으면 추억으로 쌓아올린 마지막 이야기탑조차 와르르 무너질까 두려워, 달맞이고개 너머의 세계를 완강히 거부하며 몸부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청사포를 거부했지만 마치 청사포가 나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속에서만 그곳은 수십 차례 나타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었다. 겨울날의 아련한 추억 탓일까.


그로부터 100일이 흘렀고 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청사포를 다시 향했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으신 채로 전동 킥보드에 올라 해운대에서 청사포까지 이르는 5킬로미터의 길을 묵묵히 달리셨다. 그 뒤에서 나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킥보드를 불안한 자세로 잡으며,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어느 포구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고즈넉한 언덕의 초입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


고개를 넘으면 포구의 속삭임이 들려올 테니까. 그곳에서는 미동조차 허락되지 아니할 테니까. 꿈틀거림, 비록 수백 가지 형상의 것일지라도 그곳에서는 고요함 속에서 잠들어야만 하니까.


삶의 일정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임의의 방향으로 튕기는, 조금의 충격에도 그것이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는 순간, 불안정함을 밟고 머나먼 세계로 뻗어나가야만 하는데, 나는 그저 방황하는 이끼가 되어버릴 것인가? 드리워진 잿빛 안개 사이로 멀리 날아가는 자유로운 갈매기 떼가 석양으로 물들어진 남해 바다 위를 질주하는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되찾아야만 한다는 신호에 저항해야만 하는가?


나는 어제 방황하는 존재인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아버지와 언덕을 달려야만 했던 순간, 그리고 그 아래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포구의 연기, 그 연기는 갈매기들의 날갯짓이요, 서녘으로 넘어가는 노을 아래에서 흰색과 붉은색의 등대는 아직 반짝거림을 시작하지 아니하였다.



- 2021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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