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시절에 하나둘씩 떠나는 인연들을 호명하며 침대를 눈물바다로 메운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슬픔을 전가하고 싶지 않아 내가 애써 인연의 존재를 부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종종 바다에 다녀왔다. 바다는 망각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그림들을 그렸다.
여름바다를 바라본 날 가을바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가을바다를 바라본 날 겨울바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겨울바다를 바라본 날 봄바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봄 내음새가 스멀스멀 흘러오는 창가에 앉아 오늘은 꽃이 피었을까 나뭇가지들을 힐끔 쳐다보지만 아직은 묵묵부답이다. 휴대전화에는, 마지막까지 밑바닥의 나를 지켜준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하던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다. 오랜만에 가식적이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본다.
이제는 그 흔적이 무의미한 잔상으로만 남게 되리라.
-2021년 3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