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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 Feb 06. 2021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날게요

내일은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지고 싶다. 


지난해 6월부터 매일 아침 일어난 시간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의 나는 애써 어두컴컴한 시간을 피하고 싶어, 해가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홉 시 반이면 침대에 누웠다. 여유있는 날은 새벽 다섯 시, 할 일이 많은 날은 새벽 네 시, 시험을 보는 날은 새벽 세 시쯤 일어났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잠들 무렵에 나는 잠에서 깬 셈이다. 새벽은 내게 평온한 시간이었다. 온갖 잡생각 속에서 몸부림치던 늦은 밤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해야 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6월부터 12월까지, 정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섯 시 이후에 일어난 기억이 없다. 내용은 텅 비었을지 몰라도 기상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적혀 있는 2020년의 플래너를 열어본다. '05:04 기상'이라는 표현이 가장 많다. 어쩌다가 초기값으로 설정한 알람이 5시 4분, 13분, 20분 이렇게 순차적으로 울렸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이거나 할 일이 많은 시기에는 '04:30 기상'이라는 표현이 많이 보인다. 그보다도 이른 '04:11 기상'이나 '03:38 기상'은 우연히 일찍 눈이 떠진 날들의 흔적들이다. 


그러나 2021년 새해가 밝아오면서 나의 새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방학이라는 이유로, 낮에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겨울 아침은 춥다는 이유로, 온갖 핑계를 대며 아침에도 침대에 꼭 붙어 있으려고 몸부림치곤 했다. 여섯 시에 알람을 맞춰 놓아도 번번이 헛수고였다. 알람은 끄고 다시 자면 그만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알람을 10분 간격으로 여러 개 설정했지만 마법 주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시리야, 모든 알람 꺼 줘." 


새해가 시작되고 지난 5주동안, 여섯 시 전에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한 것은 딱 두 번뿐이었다. 아침 열차를 타야 해서 일찍 나가봐야 하는 그런 경우들이 전부였다. 그 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07:33 기상', '07:48 기상', '08:30 기상'같은 숫자들만 나열되어 있다. 초심을 잃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 '내일은 다섯 시에 일어나야지'라는 문구를 매일 기록하지만,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 보면 자정을 넘기게 되고 나의 다섯 시 기상은 순식간에 물건너간다. 


그래도 오늘은 여섯 시 정각에 일어나서 책을 읽었다. 내일은 다섯 시에 눈이 떠지고 싶다. 


-2021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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