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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 Apr 24. 2021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불규칙하고 무의미한 생각과 감정들

북한강을 따라 달렸다. 마을회관에서 어르신이 내리신 뒤로는 내가 유일한 승객이었다.




청평터미널에는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고 있었다. 대합실 밖 공터에서 주머니에 들어있는 빵을 한 조각씩 베어 먹었다. 어머니가 동대문에서 사 오신 '황금똥빵'이다. 두 개 챙겨가라고 하실 때 그냥 받을 걸, 배부르다고 한 개만 주머니에 넣은 것이 후회스럽다.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조금 퍽퍽하지만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고성리를 향하는 가평 30-5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긴 편이다. 운이 좋게도 터미널에 도착한 지 20분만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황금똥빵이 없었다면 아마 그 시간동안 대합실 옆에서 김밥을 사 먹었겠지. 빵을 다 먹고 화장실에 다녀오니까 금방 출발 시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두 개를 먹을 시간은 없었던 셈이다.




터미널에서 고성리까지는 20분 거리이다. 대성3리 마을회관까지가 5분, 마을회관부터 고성리까지는 북한강을 따라 15분이다. 마을회관에서 어르신이 내리시고 버스에는 나만 홀로 남아 있었다. 오른쪽 창가에 앉아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인위적이지 않은 감각들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슬픔의 감정이 스칠 뿐이었다. 그 슬픔의 원인을 인식하고 있지만, 애써 잊어보려 한다.


창밖으로 청평댐과 북한강, 그리고 청평호가 차례차례 나타났다. 물 색깔이 푸르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맑고 순수한 구석이 있다. 강 건너편에 누군가 수상스키를 타고 있다. 자유로워 보인다. 열한 살 때부터 수상스키를 타고 싶었지만 한 번도 시도하지 못한 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매년 봄만 되면 '이번 여름에는 수상스키나 서핑에 도전해 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다시 떠오를 때쯤이면 이미 단풍이 지고 첫눈이 내리는 시기가 찾아온다. 어쩌면 이번 여름은 넘겨야 할 것이다. 다음 여름에는 도전할 수 있을까.


캠핑장이 보인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를 꺼리는 성격 때문인지 학창 시절 체험학습을 제외하고는 캠핑장에 가 본 적이 없다. 주변의 친한 친구들도, 우리 가족도, 캠핑이나 글램핑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인스타그램에 가끔씩 가평으로 글램핑을 오는 지인들의 모습이 보일 때면 항상 궁금할 따름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나의 20대가 끝나기 전에, 소중한 친구와, 또는 사랑하는 연인과, 이곳에 글램핑을 하러 와야겠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모든 추억들이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가 안정세를 보이던 지난 7월에 중학교 동창과 당일치기 춘천 여행을 한 것이 전부인 듯하다. 그때 우리는 김유정 생가를 방문하고 강촌 레일바이크를 탔다. 생각해보니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하지만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가평은 그 누구랑도 와 본 적이 없다. 대학교 신입생 때 엠티를 갔던 대성리를 제외하고는. 가평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버스 안에서의 생각들이 대체로 불규칙적이고 무의미함을 깨닫는 순간 목적지가 눈앞에 보여 내적 방황을 마무리하게 된다.


-2021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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