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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근 Jun 22. 2022

프라이드 넘치는 나의 첫 번째 직장에 대하여

너무나도 운이 좋았던, 프라이드 넘치는 나의 첫 번째 직장에 대하여

학부생 시절 누군가 나에게 '첫 직장이 앞으로의 연봉 수준을 좌우한다'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만 있었더라도 이곳을 내 첫 직장으로 삼는 것을 고민해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첫 직장 러쉬코리아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몇 안 되는 소중한 곳이었고, 30대 게이 직장인으로서 살아남기에 큰 교두보 역할을 해준 소중한 직장이다.


러쉬는 Fresh Handmade Cosmetic이라는 모토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화장품 회사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만큼 구성원들의 다양성도 보장하고 있다. 몇 년 전 우미령 대표님이 모 비즈니스 잡지에서 '남자 직원의 80%가 게이다'라고 밝힐 정도로 퀴어 프렌들리(Queer friendly)한 기업이다(그 멘트가 정치적으로 적절했는지의 여부는 떠나서). 그 이전부터도 러쉬는 동물권과 환경 이슈에 진심을 다해왔던 회사였고, 러쉬 입사 전에는 NGO에서 일하는 걸 꿈꿔왔던 나에게 러쉬는 나의 관심사(=화장품)와 가치관(=인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벌이, 환경에 대한 고민), 월 수입까지 한꺼번에 해결해 줄 수 있었기에 당시의 나에게는 꿈의 직장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에서 12년 간의 의무 교육 과정을 밟고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왔기에, 그러한 좁은 식견에서 내 직장의 선택 범위에는 있는 직장은 당연히 사무직 밖에 없었다. 하지만 러쉬코리아를 시작으로 판매직으로서 첫 직장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가 생각보다 훨씬 판매에 능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장에서의 적응을 포함해 내 첫 직장 생활은 아주 순조로웠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러쉬의 분위기가 퀴어 프렌들리 하다 못해 'It doesn't matter'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꽤나 예전이긴 하지만 내가 다녔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비장하게 커밍아웃하듯 성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약간 촌스럽게 여겨졌다. 바깥 사회(?)에서 성정체성에 대해서 입 밖으로 꺼내어 이야기하는 커밍아웃이 갖는 맥락과 의미는 아주 큰 파워를 지녔지만, 러쉬라는 조직에서는 그 파워가 아주 작았다. 너무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러쉬에 다니고 있었고, 러쉬의 사람들은 같은 직장 동료가 성소수자인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일하기 좋은 동료인가, 이 사람이 사람 자체로서 괜찮은 사람인가, 이 정도만 볼 뿐이었다. 코에 피어싱을 하든 얼굴에 문신을 하든 탈색을 하든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러쉬에 다니면서 직장 동료들에게 '제대로 커밍아웃'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누가 봐도 나는 게이였으니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없었다. 많은 게이들이 이미 러쉬에 다니고 있었고 나도 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한 사람이었으니 그게 내게 특별한 요소로 작용할 리 없었다. 오히려 나는 개성 강한 러쉬 직원들 사이에서는 다소 얌전하고 개성 없는 편에 속했다.

(이미지 출처: 헬스조선, '러쉬, 성소수자 평등 위한 '퀴어업 2019' 캠페인')


군대를 다녀온 뒤 오픈리 게이로 살아왔던 나에게 커밍아웃이 없는 삶은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러쉬를 입사하기 전에는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왜 이런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런 시야로 보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정체성에 대한 설명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내 정체성을 설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커밍아웃을 해왔고 (적어도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경험 중에서) 그러한 커밍아웃이 나쁜 결말로 끝난 적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멀어진 인연이야 있겠지만.


그렇게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1년 5개월의 첫 직장 생활을 보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커밍아웃'에 대한 욕망은 서서히 줄어갔다. 이성애자들처럼 자기를 설명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됨으로써, 내가 이 사회를 살아가며 받아왔던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러쉬를 다니면서 나는 그저 나였을 뿐이었다. 러쉬를 다니는 동안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설명을 해야 했던 적이 없었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그대로 존중 받음과 동시에, 누구나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말이 어떤 맥락에서 작용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출처: Ted.com, On coming out)


그렇게 편안한 환경에 있으면서(=이성애자들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 있으면서), 내가 커밍아웃하고자 하는 욕망 중의 가장 큰 동기는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다른 동기들도 너무나도 많지만 러쉬에서 해소된 욕망은 바로 그것이었다. 직장 밖에서는 여전히 나를 설명해야 했지만 하루의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내게 심적 안정감을 주다 보니, 내가 가진 반동적인 정서가 자연스럽게 가라앉게 된 것이다.


1년 5개월의 러쉬 라이프가 끝나고 나는 생각했다. 다음 직장에서 내가 커밍아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앞으로도 이런 직장을 또 구할 수 있을까? 직장을 구할 때만큼은 정체성을 숨겨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러한 잡념들은 곧 사그라들었다. 내 안의 마음이 이미 평화로워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5개월의 시간은 내가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지금까지의 내 직장인 생활에서의 가장 큰 심적 안정감을 주는 기간이기도 하다.


첫 번째 글에 쓴 것처럼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러쉬코리아를 재직했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 직장을 첫 직장으로 얻은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었고, 다른 직장인들이 경험하기 힘든 좋은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성정체성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직장. 내가 누구인지 탄로 날 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직장. 내 연애사를 이야기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직장 동료들. 나의 고민과 정치적 견해를 들려줄 때, 바탕이 비슷하기 때문에 공감대를 잘 형성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에 동조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그걸 뒷받침해주는 회사의 가치까지.


첫 연봉이 앞으로의 연봉을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았다면 러쉬코리아에 입사하는 걸 다시 고려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30대 게이 직장인으로서 내가 얻은 경험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나 값진 것들이 많았다. 연봉을 올리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다른 직장에서 내가 이 같은 경험을 또 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걸 알기에, 30대 직장인이 된 지금도 이곳에서의 경험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비록 러쉬코리아를 아직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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