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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근 Jun 30. 2022

게이라고 커밍아웃하고 들어간 첫 회사

작은 광고 대행사의 한 달 간의 인턴을 거쳐 가진 두 번째 정규직 직장은 친구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된 광고대행사였다. 공식적으로 내부인 추천 제도가 있는 회사였기에 바로 면접을 볼 수 있었지만 기본적인 서류 전형은 통과해야 했기에 나도 남들과 똑같이 서류를 써야 했다. 지금까지 했었던 일을 열거하자면 약 2년 간의 판매직과 한 달 간의 광고대행사 인턴 경력이 전부였기에 사실상 내가 서류에 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신입사원 사원의 서류나 다름없었다. 직장 경험은 있었지만 업종이 달랐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고, 결국 내가 서류에서 가장 많이 할애해야 할 부분은 '내가 대학 시절에 무엇을 했고 그것을 통해 어떤 경험을 했으며, 그 경험이 앞으로 이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이냐'였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을 빼면 설명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3학년일 때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포럼에 처음 나갔다가 청소년 신분을 탈피하자마자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시작했고,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내 성소수자 모임을 활성화시켰으며, 매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고, 각종 행사를 조직하고 캠페인을 하러 다녔으며, 퀴어문화축제 사회도 보고 공연도 했으며, 2014년에는 빤스게이라는 영예로운 별명(?)까지 얻어본 사람이었다.


물론 내가 이분들과 견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 이미지 출처: BBC, Pride 2019: Seven people who changed LGBT+ history


여기에 적은 건 정말 일부만 적어두었고 세세하게 적기 시작하면 정말 많이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빼고 나면 나라는 사람은 대학생 시절에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를 추천해준 친구는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내가 이러한 행사들을 추진력 있게 행하는 걸 보면서 회사에서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추진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나는 과감하게 나의 모든 이력들을 이력서에 적어 나갔다. 자기소개서, 경력 기술서에 모조리 다. 스스로를 어필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어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광고대행사인데 설마 게이라는 것 때문에 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광고대행사야 말로 다양성을 두루 갖추고 있을수록 좋은 회사 아닌가? 떨어진다면 면접에서 실수를 하든가 첫인상이 좋지 못했든가, 아무튼 다른 이유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 서류의 내용 때문에 떨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이게 2016년의 일이란 걸 생각하면 상당한 도박이기는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퀴어 프렌들리 정책을 표방하는 회사는 일부 외국계 회사들 뿐이었으며 그나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정책들이거나 할당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목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였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국내 광고대행사에 서류에서부터 면접까지 커밍아웃을 하며 들어간다는 것은 도박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은 있었다.


커밍아웃이 문제가 되는 회사라면, 그런 회사는 나도 필요 없어.


신입의 패기? 아니었다. 당시 나는 내게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통해 배워왔던 경험이 너무나 소중했다. 그리고 그것이 분명 회사 생활과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 강한 판단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정체성이 내가 회사 업무를 보는 내 업무 역량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내가 게이라는 것 때문에 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면접을 망쳤거나 서류상의 결격 사유가 있지 않다면 말이다.


면접 때는 다소 헛소리를 하긴 했지만 워낙 말발로 먹고살던 사람이라 큰 실수는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면접까지 최종 합격해 그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아, 내가 커밍아웃하며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구나.


그때부터였다. 나는 이후부터 모든 이직하는 모든 회사 서류를 쓸 때마다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물먹기도 하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내 성정체성 때문에 내가 서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라는 확신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내 확신은 더 강해졌다. 커밍아웃이 문제가 되는 회사라면 그런 회사는 나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온전하게 나로서 다닐 수 없는 회사라니, 그건 그것대로 얼마나 불행한 회사 생활인가.


그래서 지금은 회사 생활은 어떻냐고? 아직 거기까지 가려면 많은 이야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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