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디아
아우랑가바드, 어제 뜀박질로 아잔타 석굴을 보고 와서 묵었던 호텔이 있었던 곳이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나 싶다. 지칠 만도 한 데 이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쉽다. 이제 많은 것에 익숙해졌다. 지저분한 화장실도 익숙해졌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도 알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행이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마음속 생각이야 어떻든 이번 인도 여행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그렇게 아우랑가바드의 호텔에서 시작되는 중이었다.
일찍 서둘러 아침을 먹고 어제 보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엘로라 석굴로 향했다. 엘로라 석굴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6~10세기에 조성된 34개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진 엘로라는 12개의 불교사원과 17개의 힌두교 사원, 5개의 자인교 사원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인도 종교의 종합적인 조각 예술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시대별, 종교별로 정렬되어 있어서 각 종교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한다.
엘로라, 이름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엘로라 석굴은 아잔타 석굴에 비해 매우 웅장하고 규모가 큰 조각들이 가득하다. 석굴마다 특징이 있지만 이 곳 엘로라는 어제의 아잔타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보다도 1.5배는 웅장함을 자랑하는 카일라쉬 사원으로 전형적인 남인도 사원 건축 양식인 드라비디언 양식을 취하고 있다는데, 그건 당최 알 길이 없고 너무너무 멋있고 대단하게 조각이 되어있어서 엄숙하게 되더라 하는 말은 할 수 있다. 규모가 크고 조각이 웅장하고 멋질 뿐만 아니라 바위산을 그대로 깎아 만든 사원 입구로 들어서면, 인간이 만든 조각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인 광경이 가히 장관이다. 사원을 돌면서 상상을 보태어 음미해 보건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어우러진다면, 사람이 제외한 사원이 빚어낼 그 장엄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은 그대로가 이미 신과의 만남을 표시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본 것은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사원의 조각상들이었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어둠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고 안개가 끼거나....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너무나 인상적인 사원이었다.
불교 석굴에서는 인상 깊은 불타의 조각상이 있었다. 웅장하고 우아한 자태로 앉은 큰 불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장엄함을 더하기 위해서였을까, 이 석굴에서는 사람의 말소리가 깊은 울림을 더하게끔 만들어진 것 같았다. 석굴의 천장을 비롯해 전체적인 구조가 엄숙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갖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엘로라에서 인도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다. 아름다운 소녀들이 많다. 내 눈에는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혹시 내가 남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녀들이 넘친다. 그에 비해 남자애들은 뭐 그다지 ^^ . 오고 가는 길에 만난 소년소녀들, 특이하게도 맨발인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띈다. 신발을 사 신을 돈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맨발도 이들의 하나의 생활양식인지 궁금했다. 묻지는 못했다.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 엘로라와 이별을 할 시간이다. 아름다운 부겐빌레아가 흐드러진 화장실을 뒤로하고, 그래도 냄새는 어쩔 수 없음, 뭄바이로 향했다. 인구 약 1400만명의 도시로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라 한다. 뭄바이는 영국인들이 1660년대부터 쓸모없던 땅을 중요한 무역항으로 개발했고, 현재 외국 무역의 50%를 차지하는 무역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다. 인도 대표적인 기업들의 본사가 즐비하고 뭄바이에서 벌이들이는 수입이 인도 GNP의 38%를 차지한다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시아 최대의 빈민굴이 자리하고 있는 상반된 모습을 지닌 도시이기도 하단다.
뭄바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시내에 위치한 뭄바이의 대표적인 볼거리들을 어둠 속에서 눈도장 찍은 후 저녁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이 날 공항에서의 시간이 인도 여행 중 가장 힘들고 지친 시간이 되었다. 출국 심사대에 섰는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식겁을 하고 돌아보니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탈 한국인들이 몽땅 퇴짜를 맞고 있는 듯했다. 영문을 모른 체 다시 대합실로 돌아와보니 비행기가 2시간을 연착한다는 것이다. 오갈 데 없이 대합실 한 구석에 앉았지만 피곤이 누적된 탓인지 몸이 늘어졌다. 그래도 여기는 낯 선 곳이고 누구 하나 나를 챙겨 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저 멀리 동행들이 보이니 인사하지는 않아도 서로 의지 삼고 있다.
강하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두어 시간이 흐른 뒤 겨우 출국을 했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또 기다려야 한다. 더 늦어지는 비행기 출발시간.... 어떻게든 비행기만 탔으면 좋겠다 싶다. 열 한시에 타기로 되어 있었던 비행기를 새벽 두 시를 넘긴 시각에 탔다. 이때 만큼 비행기 엔진 소리와 이륙하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린 것이 없었다. 다음날,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완벽한 우리나라 같다. 말이 통하고 화장실 깨끗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내가 주인인 내 나라이다.익숙한 편안함이 어느새 우리를 안아 든다. 인도 여행을 끝내기 아쉬웠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이제 정말 집에 온 것이다. 제자리에 돌아온 것이며 끝이자 시작이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갠지스 강 보트에 앉아 아르띠 푸자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타지마할의 차갑고 아름다운 대리석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고, 카주라호 에로틱 사원의 그 므흣한 조각상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침대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이 떠오르고 엘로라 석굴에서 울리던 웅장한 소리와, 바위산을 그대로 깎아만든 사원의 그 찬란한 장엄함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인도문 뒤로 붉게 빛나던 시뻘건 해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으로 돌아와 인도에 관한 관광책자를 구입했고 인도에 관한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기만 한다면 다시 인도로 날아가 보고 싶다했다. 새로운 루트를 계획해 두고 마음 셀레기도 했다.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꿈꾸다 보면 언젠가 그곳에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첫 번 째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지 약 2년 뒤 나는 조금 더 느긋해진 마음으로 블루시티 조드푸르와 골든 시티라 불리는 자이살메르 사막지대 그리고 델리의 시장, 타지마할을 방문했다. 이른 아침이나 보름달 뜬 타지마할은 바람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리고 이 번엔 기차가 연착되는 덕택에 델리역을 샅샅이 돌아다니는 행운을 얻었다.
내 선명한 기억과는 달리 지금 펼쳐보니 첫 인도 여행은 흐린 사진 속에 남아있어 놀랐다. 사진을 인주 조금 즐기기 시작하고 보니, 이 사진들을 실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대체할 수가 없는 고유한 것이다. 언젠가 말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전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