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America
천정 히터 돌아가는 소리와 이동식 히터가 번갈아가며 내는 소리 사이로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어둠에 숨어들어 귀 기울인다. 무거운 커튼을 걷어내고 창문을 열어 확인하면 비 아닌 것을 마주하게 될까봐 소리만 뽑아올린다. 빗소리가 맞다. 여행을 떠나는 날에 비가 내린다.
뒤틀린 허리를 꼬며 누워견디지 못하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어젯밤 졸린 눈으로 꾸려둔 가방들 곁에 앉아 비상약, 충전기들과 물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담았다. 입고 갈 옷도 다시 바꿔두고 가방 세 개를 꾸려두니 떠날 준비는 다 되었다.
미국 서부지역을 내려갔다 오는 버스여행을 떠날거다. 9박 10일이다. 두 달간의 미국여행 중에는 미국 전역을 돌 계획도 세워두었지만 막상 와보니 그건 내 입장만 생각한 욕심같다는 결론 하에 간단하게 미국서부지역만 돌고 오는 것으로 마음 정리를 했다.
캐나다에서 부터 건너온 커다란 에어버스에 올랐다. 나를 향해 흔들던 손들이 멀어져 갔다. 시애틀 타코마 지역 한인 식당을 들러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고 한국 식품점에서 간단하게 장을 봤다. 컵라면과 햇반 몇 개 그리고 김과 볶음 고추장과 물 두 병을 구입했다. 당연한 듯 젓가락을 달라고 했더니 못알아듣는다. 찹스틱이라 했더니 사야 한단다. 다시 돌아가기가 번거로워 상점을 나왔다. 지난 중국 여행에선 젓가락을 구하지 못해 호텔에 비치된 칫솔 두 개로 라면을 먹었다. 아직 저녁까지는 시간이 있으므로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피아 강에 비스듬히 내려앉을 석양을 바라보며 버스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오른쪽 하늘 높이 혼자 빛나는 해는 시름시름 앓는 듯하다. 워싱턴 주를 벗어나 오레곤을 향해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퇴근시간을 연상케한다. 각양각색의 트럭과 자동차들, 영문으로 씌어진 표지판이 없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을 것도 같다.
열흘 넘게 사람들 속에서 복닥거리던 시간이 힘겨웠던지, 아무도 방해않는 이 시간이 편안하다. 그렇다. 나는 전형적인 내향적 성격이다. 소위말하는 MBTI 검사를 통해 나타난 나는 아주 내향성이 강하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반드시 일정시간 내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외향적 성격의 사람들이 대인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반면 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힘이 차오른다. 오늘 쏟아낸 힘은 내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채우고 그 힘으로 내일을 살아간다.
노을을 준비할 해를 향해 그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고개 돌린 곳마다 숲으로 반겨주는 풍경과 강력하게 들려오는 힘찬 Fun의 사운드가 있는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이기적인 사람이라 말해도 웃을 것이고 멋대로인 사람이라해도 그냥 그렇다 말하겠다. 고개를 돌리면, 뒤로 밀려나는 비스듬한 강들과 숲 속 듬성 듬성 박혀있는 사람들의 집을 보는 한 나는 꿈같은 시간 속에 있으니.
혼자 있으면 비로소 혼자 된 것 같아서 좋다. 말 거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나인것 같아서 좋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 늘 눈 앞의 대상에게 몰입하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내 곁에 사람이 없는 지금이 가장 나와 친한 시간이다. 때론 이렇게 나와 친구가 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