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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뮌헨 가는 길

반갑다, 뮌헨

by 알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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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야 했다. 파리의 숙소를 나서면서 주인아주머니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파리는 생각지도 못한 인간미를 곳곳에서 느끼게 해 준 도시였다. 파리 북역에 도착해 어설프게 숙소를 찾아갈 때 겪었던 전철역에서의 기억은 일 년 반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게이트를 통과하도록 표를 찍어주시던 흑인 할아버지, 바를 열어주던 아주머니, 계단에서 내 가방을 번쩍 들어 옮겨주던 중국인 아저씨까지, 파리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건축물과 유명 장소보다 사람이 더 먼저 달려온다.

숙소 주인아주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눌 때는 그녀가 파리 그 이방인의 도시에서 안정적이기를 바랐다. 그녀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파리 한 복판에서 오직 조선말을 쓰면서 그렇게 살아남을 것이었다. 지난 십 년 간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기를 바랐다. 불안한 일 없이, 숙소를 찾는 한국인에게 한국 밥상을 차려주면서, 그녀의 자식들과 오손도손 살다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꾹꾹 눌러 담아 나선 길이었다. 최악의 숙소 화장실과 대비되던 아주머니의 손에서 탄생한 파파야채 무침의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내 양말을 빨아주시던 친절함도 잊을 수 없다. 하룻밤 마주 앉아 아주머니의 살아온 세월을 묻고 들어준 데 대한 보답이라 여겼다. 내 작은 짐을 보면서, 무릇 여행자의 짐이 그래야 한다던 조선족 아주머니. 여행을 통해 나는 유명한 장소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찍힌 발자국을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뮌헨행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파리 동역에 도착했을 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 스타벅스에 들렀다. 간단한 빵 하나를 샀고 커피를 주문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문득 그 공간에 동양인이 나 혼자란 사실을 느꼈다. 생소하고 외롭고 쓸쓸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숨기기 위해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주문한 커피가 나오지 않았다. 차례를 여럿 지나고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여러 번의 재촉에도 대책 없이, 대답조차 않는 직원에 부아가 치밀었다. 화가 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갈 때쯤 내 표정을 읽었는지, 미안하다며 커피를 건네주었다. 불쾌한 일이었지만, 그런 불쾌함이 마음을 어지럽히도록 두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가치 없는 것들은 쉽게 잊어야 한다. 창밖을 바라보며 빵과 커피를 마셨다. 때마침 걸려온 한국에서의 전화를 통해 마음이 누그러지고 따스해졌다.

퍼뜩 잠에서 깼다. 승무원이 느닷없이 문을 열고 불을 켰다. 본능적으로 시각을 체크했다. 내리기 20분 전이었다. 사람의 온몸과 마음은 생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내리기 20분 전에 퍼뜩 눈이 떠지다니....... 이 우주는 나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게 분명했다. 야간열차를 열한 시간 넘게 타야 한다고 딱히 걱정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잠든 밤새 내 모든 것이 안녕한지 점검했다. 열차를 타기 전 들어왔던 일말의 불안과 두려움은 잠 덕에 잊었다. 다행히 모든 짐들이 제자리에 있었다. 기쁜 일이었다.

이층에서 내려와 내릴 준비를 했다. 복도로 나오니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뮌헨은 내가 오는 줄 몰랐다.
중앙역에 내리니 어제 보던 그 커피숍이 여기서 또 기다린다. 내 것도 아니면서 반갑기까지 하다. 이른 아침 나의 미션은 오늘 짐을 풀 숙소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설명대로 따라 나가보았다. 설명에 나온 피자집이 공사 중인지 사라지고 없다. 저 큰 구름 밑에 보물을 숨겨두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은 '어이가 없다'이다.

대강 방향을 잡고 걸어가 보아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퉁퉁 부은 몸과 두 다리 그리고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내가 아닌 사람이 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참담한 목소리와 얼굴을 한 내가 뮌헨 중앙역 근처, 아침 여덟 시도되지 않은 때 방황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이 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굴까?

저기 멀리 쓰레기 청소하시는 아저씨가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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