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뮌헨
넋을 잃고 앉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본격적으로 English Garden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상쾌하고 청아한 아침 공기가 전해온다. 신선한 공기는 피부에 와 닿았고 걷는 동안 짙푸른 냄새가 났다. 세찬 물결은 도시에서 시작해 공원으로 흘러들었고 함성을 지르던 물소리에 따라 서퍼들은 유연하게 균형을 잡았다. 자연스러우면서 자유로워 보였고 보드 위에서 완벽한 균형을 자랑하던 몸은 아름다웠다.
새소리 그리고 가끔 지나치던 사람들의 인사, 눈을 감으면 녹색에 묻혀있던 조각들이 튀어 오른다. 공원은 맑고 깨끗한 물이 풍부하게 흘러갔다. 물은 사람들에게 놀이터도 되었고, 곁도 내어 주었다. 사람들은 나무 늘어진 물가에 앉아있었다. 멀리서 보니 하나 둘 아니면 셋으로도 앉아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이야기를 건네는지 궁금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은 곧 내 곁을 씽하고 지나갔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그들을 느끼자 묘한 슬픔이 일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공간에 혼자된 느낌이 났다. 이런 나를 세상 누구도 속속들이 알 수없고,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이 그런 만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이방인이 되고 싶어서 우린 자주 익숙한 곳을 떠나는지도 몰랐다.
혼자일 땐 철저히 혼자여야 했다. 혼자 있음으로써 내 작은 요구와 느낌과 필요에 민감해지고, 마음과 의식이 말 거는 소리를 더 잘 들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친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이 필요했다. 자주 혼자가 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멀리까지 오지 않고도 됐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나는 아웃사이더였고 떠나는 것을 좋아했다. 갑갑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낯 선 곳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고, 약간의 긴장은 한 꺼풀 벗겨질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으로 충분히 상쇄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오래 기억되는 이른 아침의 녹색공원은 특별했다. 뮌헨 여행이 내게 준 잊을 수 없는 선물이다. 야간열차를 타느라 퉁퉁 부은 얼굴은 오히려 그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손도 발도 붓고, 목소리는 잠겨서 둔탁한 저음을 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마음으로 말을 건넸고 머리로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그 순간 속에 서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거기 있던 순간은 사실이었다. 꺽꺽한 목소리와 터벅거리는 발걸음을 보니 내가 맞았다.
지도를 보면서 길을 따라 정원을 한 바퀴 돌았던 모양이다. 정원 외곽으로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엔가 정원으로부터 외부로 이어진 길이 나타났고, 지명을 읽자 가슴이 뛰었다. 부지불식간에 나는 몇십 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죽도록 나를 좋아한다던, 순하고 선했던 그 녀석, 맥주집 불빛 아래에서 웃음을 흩날리던 그 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대학시절 그 녀석이 전해주던 슈바빙이 시작되는 지점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