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러시아
커피를 진하게 내렸고 랩톱을 끼고 앉아 음악을 틀었다. 새로 발견한 Jake Bugg의 노래를 듣다가 이어폰을 찾아왔다. 나를 부르는 듯한 음색과 멜로디를 무한 반복해 듣고 있다. Note To Self .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소리에 다가가고 싶을 땐 눈을 감는다.마치 나를 향해 부르는 노래 같고 말 거는 것 같다. 허스키한 음성이 가슴에까지 와 닿는다. 아릿한 행복감이 몰려온다. 옆엔 커피가 있고 랩톱을 끼고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으며, 음악과 나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없다. 거의 완벽하게 행복한 조건을 갖췄다.
종일 세수도 않고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갑갑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의식할 수 없는 사이 하루가 지났고 비 내리는 밤이 되었다. 혼자 앉아 지내는 이런 나날은 인내심을 요한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불러 앉히고 지겨운 시간을 견뎌내게 하는 게 쉽지가 않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무엇을 향해 가는지 자신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수월하다. 스스로에게 이르기를 오늘 또한 내 꿈을 향해 가는 걸음이라 일러두었다. 멀리 여행길에 나선 이들이 들려주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여행이라는 낱말이 주는 약간은 쓸쓸하면서도 오롯이 내가 되는 완벽한 하루를 떠올렸다.
지난 여행을 그리워하며 이르쿠츠크 시장에서 사온 털 모자를 쓰고 돌아다녔다. 책을 볼 때도 무언가를 쓸 때도, 물을 마시고 일주일을 기다리던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에도 모자를 썼다. 부드러운 모자의 방울을 만지작거리자 여우 털이라 말하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시장에서 모자를 썼던 순간과 그때 흩날렸던 눈발 그리고 이 모자가 더 어울린다고 말해주던 진영의 눈웃음이 생각났다. 그리운 마음과 행복한 마음이 든다. 화장실에 가서 이를 닦다가 거울을 보니 제법 잘 어울렸다. 더 행복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니 포트 바이칼 숙소에서 흐르던 음악이 떠오른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노래들이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었다. 아름다운 정경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음악이 입혀진 풍광은 그 속에 다른 이야기를 그려내는 법이다. 추위에서 안락한 세상으로 안착한 우리에게 음악은 축포 같았었다. 좋았다.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렸고 창밖의 세상은 선율을 입어 더 빛났다.
창을 통해 내다보던 밖은 깊은 눈 속에 잠겨 있었고, 고요한 그 시간을 흰 자작나무가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 했을 시간으로부터 그 순간까지 나무와 눈이 나누었던 속삭임은 어떤 것이었을까. 흰 눈에 덮이지 않아도 희게 빛날 자작나무는 눈 속에서 더 완벽하게 어울렸다. 겨울이 사라져 갈 때에 흰 나무는 눈에게 어떤 말로 작별을 고할까.
자작나무 숲에 가 보는 것은 내 오랜 꿈이었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것으로 보아 꿈과 자작나무는 닮았다. 횡단열차를 타고 며칠을 달리는 것도 오래 간직해 온 들뜬 꿈이었다. 저 멀리에 기쁜 별처럼 빛나며, 잊지 않게 하고, 살도록 하고, 결국 찾아 나서게 하는 것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내 꿈은 닮았다. 꿈은 잊지 않아야 하고 결국 찾아 나서야 하는 거다. 내 앞에 닥쳐온 모진 현실이 내 꿈을 앗아간다고 말하고, 현재를 사느라 내 꿈을 찾아 나설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 꿈은 빛으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스러져간다.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잊혀진 먼 과거의 희미한 빛 가루로 바스러지고 이루지 못한 소망이자 회한의 이름이 된다.
잘 차려입고 내 앞에 나타나는 완성된 형태의 꿈은 없다. 간절하게 소망하고 그 소망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기어코 이루어내는 용기가 있는 자가 가질 수 있는 환희이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열매이다. 자작나무를 보는 것과 횡단열차를 타는 것은 비교적 쉬운 꿈이다. 길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하여 마음으로 그린 그것들이 내 앞에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열망하는 것만으로 내가 고요하게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마주하게 되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꿈꾸던 자작나무는 부단한 노력의 끝에서야 맞닥뜨릴 수 있는 유형의 물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며 만나러 가는 긴 시간 동안 내 곁을 지키는 나무이기도 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깨이기도 하다. 나는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며 그리움만큼 자작나무를 향해 간다. 나의 꿈이 그러하고 너의 소망이 그러하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이 음악을 포트바이칼의 자작나무 숲에서 들어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떠나기 전날, 해질녘 숲에게 인사하고 싶어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걸었던 두 방향의 숲에 각각 찾아가 짧은 안녕을 고했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나 인사하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너는 네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푸르게 살아가자 속삭였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서도 싱긋 웃었다. 자작나무 가지들이 그려내던 아름다운 무늬를 바라보며 너는 자작나무로서의 꿈을 꾸고 나는 내가 되는 꿈을 꾸자고 했다.
배경사진: 여행가 Quan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