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OME NIGHTS

자작나무 숲에서

안녕, 러시아

by 알버트



커피를 진하게 내렸고 랩톱을 끼고 앉아 음악을 틀었다. 새로 발견한 Jake Bugg의 노래를 듣다가 이어폰을 찾아왔다. 나를 부르는 듯한 음색과 멜로디를 무한 반복해 듣고 있다. Note To Self .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소리에 다가가고 싶을 땐 눈을 감는다.마치 나를 향해 부르는 노래 같고 말 거는 것 같다. 허스키한 음성이 가슴에까지 와 닿는다. 아릿한 행복감이 몰려온다. 옆엔 커피가 있고 랩톱을 끼고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으며, 음악과 나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없다. 거의 완벽하게 행복한 조건을 갖췄다.

종일 세수도 않고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갑갑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의식할 수 없는 사이 하루가 지났고 비 내리는 밤이 되었다. 혼자 앉아 지내는 이런 나날은 인내심을 요한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불러 앉히고 지겨운 시간을 견뎌내게 하는 게 쉽지가 않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무엇을 향해 가는지 자신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수월하다. 스스로에게 이르기를 오늘 또한 내 꿈을 향해 가는 걸음이라 일러두었다. 멀리 여행길에 나선 이들이 들려주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여행이라는 낱말이 주는 약간은 쓸쓸하면서도 오롯이 내가 되는 완벽한 하루를 떠올렸다.

지난 여행을 그리워하며 이르쿠츠크 시장에서 사온 털 모자를 쓰고 돌아다녔다. 책을 볼 때도 무언가를 쓸 때도, 물을 마시고 일주일을 기다리던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에도 모자를 썼다. 부드러운 모자의 방울을 만지작거리자 여우 털이라 말하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시장에서 모자를 썼던 순간과 그때 흩날렸던 눈발 그리고 이 모자가 더 어울린다고 말해주던 진영의 눈웃음이 생각났다. 그리운 마음과 행복한 마음이 든다. 화장실에 가서 이를 닦다가 거울을 보니 제법 잘 어울렸다. 더 행복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니 포트 바이칼 숙소에서 흐르던 음악이 떠오른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노래들이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었다. 아름다운 정경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음악이 입혀진 풍광은 그 속에 다른 이야기를 그려내는 법이다. 추위에서 안락한 세상으로 안착한 우리에게 음악은 축포 같았었다. 좋았다.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렸고 창밖의 세상은 선율을 입어 더 빛났다.

창을 통해 내다보던 밖은 깊은 눈 속에 잠겨 있었고, 고요한 그 시간을 흰 자작나무가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 했을 시간으로부터 그 순간까지 나무와 눈이 나누었던 속삭임은 어떤 것이었을까. 흰 눈에 덮이지 않아도 희게 빛날 자작나무는 눈 속에서 더 완벽하게 어울렸다. 겨울이 사라져 갈 때에 흰 나무는 눈에게 어떤 말로 작별을 고할까.

자작나무 숲에 가 보는 것은 내 오랜 꿈이었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것으로 보아 꿈과 자작나무는 닮았다. 횡단열차를 타고 며칠을 달리는 것도 오래 간직해 온 들뜬 꿈이었다. 저 멀리에 기쁜 별처럼 빛나며, 잊지 않게 하고, 살도록 하고, 결국 찾아 나서게 하는 것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내 꿈은 닮았다. 꿈은 잊지 않아야 하고 결국 찾아 나서야 하는 거다. 내 앞에 닥쳐온 모진 현실이 내 꿈을 앗아간다고 말하고, 현재를 사느라 내 꿈을 찾아 나설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 꿈은 빛으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스러져간다.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잊혀진 먼 과거의 희미한 빛 가루로 바스러지고 이루지 못한 소망이자 회한의 이름이 된다.

잘 차려입고 내 앞에 나타나는 완성된 형태의 꿈은 없다. 간절하게 소망하고 그 소망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기어코 이루어내는 용기가 있는 자가 가질 수 있는 환희이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열매이다. 자작나무를 보는 것과 횡단열차를 타는 것은 비교적 쉬운 꿈이다. 길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하여 마음으로 그린 그것들이 내 앞에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열망하는 것만으로 내가 고요하게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마주하게 되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꿈꾸던 자작나무는 부단한 노력의 끝에서야 맞닥뜨릴 수 있는 유형의 물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며 만나러 가는 긴 시간 동안 내 곁을 지키는 나무이기도 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깨이기도 하다. 나는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며 그리움만큼 자작나무를 향해 간다. 나의 꿈이 그러하고 너의 소망이 그러하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이 음악을 포트바이칼의 자작나무 숲에서 들어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떠나기 전날, 해질녘 숲에게 인사하고 싶어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걸었던 두 방향의 숲에 각각 찾아가 짧은 안녕을 고했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나 인사하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너는 네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푸르게 살아가자 속삭였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서도 싱긋 웃었다. 자작나무 가지들이 그려내던 아름다운 무늬를 바라보며 너는 자작나무로서의 꿈을 꾸고 나는 내가 되는 꿈을 꾸자고 했다.



배경사진: 여행가 Quan 촬영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