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프라하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두고 가방을 들었다. 오래 머물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니 지금도 그런 듯하지만, 몇 번은 인사하고 먼저 말 걸어와야 인사하던 나였으므로, 시간에 맞춰 말없이 길을 나선다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그 문을 돌아서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사람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아릿한 마음이 들긴 했었다. 그래도 우리 사는 동안 그런 찰나적인 슬픔을 느낄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 리셉션의 친절했던 직원에게 인사하려 했지만 그 새 사람이 바뀌었다. 이동 중일 땐 너무 많은 것에 기대지 않고 마음을 흘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새벽길을 걸었다. 아직 어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간은 터벅거리며 걷는 내 발자국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듯하다.
중앙역, 아무래도 좌석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맘에 걸렸다. 현장에 가서 알아봐야 한다고 일찍 나선 길이었다. 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처음 실수는 늘 있는 법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너무 시간이 많아도 안 될 모양이었다. 기차표를 확인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오가는 모두가 기계에서 표를 샀다. 나는 이미 표를 가지고 있어서 그냥 타기만 해도 되는 노선이었었는데, 처음 그걸 알리가 없었다. 그때 내가 겪은 여행길의 일들은 어쨌든 나로선 알지 못해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두건 쓴 아저씨에게 핀잔 들으며 부스럭 거리며 준비하고 나온 힘이 뻗쳤는지 안 사도 될 표를 기계에서 굳이 사서 그 표 반환하느라 물어물어 얼마를 돌아다녔던지.... 거금 십오만 원이 넘는 표였다. 개찰구 직원들도 등장하기 전부터 시작한 그날 아침 중앙역에서의 땀나던 해프닝은 두고두고 생각난다. 참 어리버리 했던 나를 알아본 일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돈을 환불받아 나왔을 땐 기뻤다. 직원들도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던 것인지 확인하고 전화해가며 환불해주더라. 나중엔 자기들도 처음이라면서 웃었다. 나도 웃었다. 분명 직행이라 했던 기차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고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는 또 한차례의 사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체코 프라하 메들링 역에 내렸다.
뮌헨 중앙역에서 기다릴 때 한국으로부터의 전화가 왔었다. 그렇지 않아도 약간은 위축된 마음은 가벼운 안부전화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돌아보면 혼자이고, 내 짐과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느낌을 가지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 삶을 책임질, 아니 먹고 입고 자는 내 생계가 결국은 내 손에 의해 해결된다는 그 지극히 현실적이고 어디 한 군데 포장할 곳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가방을 메고 나서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혼자 여행할 때마다 나는 조금 비장해지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오직 나에게 일어나는 일차원적인 사건의 발생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내 범주 안으로 사람을 들이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관계를 맺지 않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컨트롤하게 있어서 세상은 조금 더 만만해지고, 내 마음이 동하지 않은 곳은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안과 긴장감, 모험심, 도전, 해결의 기쁨과 새로운 만남의 시작과 잦은 작별, 그리고 세상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동질감과 이질감에 대한 통찰과 나의 미래를 위한 계획까지....... 이질적인 것 속에서 오히려 나를 집중해서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게 나로선 여행이라는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사람들 속에 있지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 중요하다.
뮌헨에서 프라하를 향해 가는 길, 그 기차에선 내내 6인실에 널찍하게 앉아 왔다. 좌석 번호가 굳이 주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가 싶었다. 난 그 길에서 꼬맹이랑 할머니를 만났다. 우린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대화 가능한 언어가 없었다. 그래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별다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언어로 말했다. 나는 어설픈 영어, 그리고 그들은 체코어였겠지. 아이와도 이야기했고 할머니와도 웃으며 이야기 나눴다. 의사소통의 삼분의 이는 비언어적 표현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실감하고 확인 한 시간, 그리고 내가 어딜 가든 아이들 특히 가족들과 이야기를 잘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나의 관심은 숨길 수 없고 내 본성 또한 어딜 가도 발현된다는 것, 멀리 떠났으나 결국 내 안의 나도 같이 왔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아이와 할머니와 초콜릿을 나눠 먹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어찌 생각해보면, 나보단 초콜릿이 아이에게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그것이 여행인 걸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