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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버킹엄 궁 인파 속

HELLO, UK

by 알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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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 궁을 보러 가기로 했다. Green park 역에서 내리면 궁으로 갈 수 있다는 안내에 따라 출구로 나섰다. 출구에서 나온 사람들은 넓은 공원을 걸어야 했다. 듬성듬성 나무가 서있는 공원을 지난다. 사람들은 인사를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걸었다. 마침내 다다른 육중한 철문, 그 사이로 우우~ 쏟아지듯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러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름 같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도 직감했을 것이다.


어렵게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모르긴 해도 저 멀리 궁 안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열릴 것이란 것을 안 뒤 선택의 기로에 섰을지 모르겠다. 멀리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철문 가까이 가야 한다. 그래서 이른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궁은 그걸로도 모자라 두 겹 세 겹 에워싸이는 중이었으므로. 몇 년 전 여름이었던가, 대만 충렬사 그 타들어갈 듯한 태양 아래에서 흰 제복을 입은 그들의 근위병 교대식을 본 뒤론 이런 세리머니에 대한 환상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때 사람들은 그들의 걸음을 따라갈 수 있었고, 내 코 앞에서 자리가 바뀌고, 얼굴 표정과 눈 깜빡임까지 읽은 터였다. 태양도 뜨거웠고 그들도 뜨거웠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틈 속이니 어디서든 사람들을 만나기는 쉬웠다. 없는 틈 새에서 내 자리를 만들어 내어주며 눈인사와 미소를 짓는 사람들, 이방인들은 종종 나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그런 인사를 건넸다. 나도 그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어딜 가든 습관적으로 한국인을 찾았다. 내가 그들을 찾아낸다 하여 무엇이 달라지거나 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그곳은 낯 선 곳이었고 무수한 사람들 틈에 있었던 때이므로, 그 누구라도 나와 닮은 이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틈에서 반가운 말을 들었다. 한국말이었다. 가족이었다. 아이 둘과 아빠였다. 나도 예의 그 환한 미소와 반가움으로 인사를 건넸다. 체험학습을 내고 아이들과 여행을 하는 중이라는 말에 진심을 담아 있는 힘껏 칭찬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선생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었으므로 그것이 어떤 것이란 것을 알았다. 멋진 아빠라고 웃음을 담아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 태도가 떨떠름해 반가운 그 마음을 나도 모르게 취소하고 싶었다. 자기들의 여행을 말하는 데 왜 처음 보는 나에게 그런 거드름이 필요했을까. 아빠와 함께 여행하는 내내 아이들은 아빠를 닮고 배울 터였다. 아빠 옆에 있는 아이들 역시 무례하게 굴긴 아빠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웬 사람이 귀찮게 말을 거나?’하는 것처럼 빤히 쳐다볼 뿐 그 흔한 인사도 미소도 없다. 말하는 태도 역시 사람에 대한 예의는 묻어나지 않는다. 비단 그 행동은 나에게만 보이는 태도는 아닐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거 뭐지?’ 싶었지만, ‘그래, 이런 가족들도 있지 참’ 하고 짧게 생각했다.


'당신은 여행을 통해 미소 짓는 법을 더 배워야 해. 마음으로부터 존경받고 싶다면 아이들에게도 예의 바른 몸가짐을 더 가르쳐야겠어. 그렇게 본다면 아이들과 여행을 잘 시작했다구.......'

물론 혼잣말이었다. 런던 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찾은 반가운 얼굴들로부터 얻은 마음 치고는 그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에겐 그들만의 사정이 있으리라 믿으며 고개를 돌렸다. 반가웠던 만큼 불편해진 마음을 안고 걸어 나왔다.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헝클어진 마음을 차곡차곡 개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야 낯 선 나를 만나 인사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러는 넌 네 옆의 사람들을 향해 잘 웃니? 그들에게 자주 안부를 전하기는 하는 거니? 그들이 아픈지 혹은 슬픈지 궁금하긴 하고, 때론 그들이 말 걸 수 있도록 한 쪽을 비워두기는 하니?'


잘 만들어진 세리모니를 관람하는 사람들 곁을 지나쳤다. 근위병 교대식은 궁 안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였다. 굳이 그것을 볼 이유는 없었다. 훈련받은 그들이 절제된 걸음으로 정해진 시간에 교대할 상대를 향해 걸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석고처럼 서서 일정한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모르긴 해도 교대식을 마치고 그 좁은 공간 정지된 시간으로부터 놓여난 병사는 “얼음 땡”에서 풀려난 듯 자유를 획득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원래 마음대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맘껏 기뻐할 것이었다.


근위병 교대식이나 세리모니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비슷했다. 생김새도 말도 달랐지만, 자신이 주체로 참여할 수 없는 시간을 지켜보는 일에는 그리 차이 날 무엇인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정문과 연결된 대로를 따라 걸어나오는 길, 넓고 아름답다. 그만 궁으로부터 발길을 돌려 나오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판단을 했을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멋진 길이었다. 마침내 그 길 끝에 선 게이트를 통과하고 나면, 트라팔가 광장이 다시 깜짝 나타났다. 그러니까 트라팔가 광장은 내 런던 여행의 중심처럼 여겨졌다.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다시 우중충했다. 내 마음이 흐린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하늘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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